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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Croatia)

143. 차타고 플리트비체 호수공원을 향해

  우주여행자와 헤어지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갈림길에서 방향을 북쪽으로 튼 후 계속해서 달린다. 예상대로 길은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된다. 그래도 해발 1,000m도 되지 않고 급경사도 없어서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완만한 크로아티아 내륙 도로><주변은 바위산>

  무엇보다 주변 경치가 모든 피로를 잊게 해 준다. 하지만 누군가 옆에 있으면 더 좋을텐데……. 항상 함께 달리고 헤어진 후에는 약간의 의욕상실을 느낀다. 그렇다고 지체할 시간은 없다. 이틀내로 플리트비체(Plitvička)에 도착해야만 한다.

<가드레일에 Wing을 기대어 놓고 잠시 휴식>

  주변의 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들판은 예의 그 연녹색 거기다 햇빛에 따라 채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이런 녹색의 들판은 크로아티아(Croatia)에서만 본 것 같은데 매우 마음에 드는 색상이다. 계속 이런 경치를 보면서 달리면 시력에도 도움이 되겠지?

<아무리 보아도 신기한 색감의 푸른 들판><키다리 사이프러스 나무>

  경치도 길도 좋은데 통행이 없으니 조금은 따분한 길이다. 마침 작은 까페가 나타났다. 식사도 하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나무가 듬성듬성한 언덕>

  햇살이 무척 좋아서 달리기는 좋았지만 좀 덥다. 우선 좀 씻고, 간만에 일광소독도 해야겠다. 침낭을 펼쳐 Wing에 걸었다. 이제 Wing은 킥스탠드가 부러지면서 혼자 서 있지도 못하지만 요령껏 기대에 놓으면 빨래건조대 역할은 충분하다.

<침낭 일광소독 중>

  세수하고 머리를 감는데 어느새 머리가 많이 길었다. 자고 일어나면 부스스하고 헬멧을 쓰면 엉망으로 눌린다. 땀까지 흘리면 도무지 감당할 수 없다. 대체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머리 긴 사람들은 어떻게 관리를 할까?

  Gračac이라는 제법 큰 마을이 나타났다. 이정도 규모면 이발소가 있을 듯. 그런데 이발소는 없고 작은 미용실만 하나 보인다. 미용실에서 가격을 물어보는데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남자머리는 깎지 않는가보다. 이발은 나중에 할 수 밖에.

  미용실 옆에는 축구장이 있었다. 유소년팀 교육인 듯 한데 체계적이다. 멍하니 축구훈련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유소년팀 훈련 모습>

  날도 저물어 가고, 다시 혼자가 되니 지루한데다 도무지 흥이 나지 않는다. 시간도 여유 있으니 오늘은 이쯤에서 대충 정리해야겠다.

  Bruvno 마을을 앞두고 도로 곁에 괜찮은 풀밭이 눈에 띈다. 풀이 좀 길어 통행에는 불편하지만, 푹신푹신하고 바닥 냉기도 차단하니 야영에 더없이 좋을 것 같다.

  텐트에 불을 켜놓고 도로에 나가보니 거의 눈에띄지 않는다. 불만 끄면 안보일 듯. 오늘도 편안하게 쉬겠구나.(주행거리 80.18km, 누적거리 9,818km)

<이정도면 눈에 안띄겠지?>

  전날은 그렇게도 화창하던 날씨가 어째 좀 이상하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고, 가끔 빗방울도 떨어진다. 그래도 날씨 외에는 달리기에 좋은 조건이다. 길은 평탄한데다 계속 1번국도만 따르면 된다. 가끔 고가도로가 나오기는 하지만, 차량통행이 거의 없어서 위험하지도 않다.

<계속 직진>

  그러던 중 또다시 도로 포장구간이 나타났다. 한번 크게 고생한 기억이 있으니 절대 아스팔트를 밟으면 안되겠다. 길가 좁은 공간으로 조심조심 간다. 마침 자전거 여행자 한 그룹이 오고있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다시 이동.

<자전거 여행자와 만남><아스팔트 살포 중>

  아스팔트 구간을 잘 피했다 싶었는데 얼마 후 또 바퀴가 이상하다. 또 다시 뒷바퀴 펑크. 으으으. 요 며칠 새 계속 펑크다. 이제 타이어 수명이 다한건가? 그러고 보니 타이어가 많이 닳았구나. 뒷바퀴가 더 빨리 닳는 듯. 도시에 들어가면 타이어 위치한번 바꿔야겠다. 예비튜브도 구입하고 전체적으로 싹 정비를 해야겠다.

<으으 펑크, 펑크>

  한 저수지가 눈에 띄더니 또 다시 자전거 여행자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독일인 커플. 조지라는 이 친구는 마침 플리트비체에서 왔고 쉬베니크(Šibenik)로 간다고 한다. 나랑 정확히 반대다.

  아니, 대체 내 경로가 이상한건가? 어째 만나는 사람마다 내 반대로 달릴까? 더 북쪽에서 오는 사람이 있다면 돌아가는 사람도 분명 있을텐데.

  서로 앞으로의 도로 정보를 묻는다. 그런데 반갑지 않은 소식. 조금 더 가서 꽤 긴 비포장도로가 나올거라고 한다. 흠. 비포장도로가 있을 법한 구간은 아닌데. 아마 그가 이상한길로 왔겠지?

<독일 자전거 여행자 조지>

  반신반의하며 계속 달린다. 조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Bjelopolje라는 마을에 들어서자 진짜로 비포장도로가 나타난 것. 설마 1번국도를 지금 만들리는 없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로를 재포장하려는 것 같다.

<결국 비포장도로 등장>

  그다지 험한길은 아니지만 타이어 상태가 못미더워 끌고가기로 했다.

  듣던대로 비포장 구간은 제법 길다. 음 이러다가는 시간 깨나 걸리겠는걸?

<더없이 평화로운 주변 풍경>

  그때 마침 용달차 한 대가 멈춰서더니 차에 타라고 한다. 일단은 괜찮다고 사양했다. 사실 짐 분리하기가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마음을 읽은건지, 자전거 채로 실을 수 있다면서 포장도로가 나올 때까지 함께 가자고 한다.

  이 친구의 이름도 마르코. 마르코가 크로아티아에서 상당히 흔한 이름인가보다.

<편안한 이동을 도와 준 마르코>

  그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I Hercegovina;BiH)의 모스타르(Mostar) 출신으로 크로아티아 전역에 화물을 운송하고 있다. 나도 모스타르에서 왔다고 하니 더욱 반가워한다.

  고마운 마르코의 도움으로 약 5km에 달하는 험로를 무사히 넘었다. 그러고 보니 현지인의 도움으로 차량이동한 건 처음이다.

<하차중인 Wing>

  Korenica라는 마을에 들어서자 다시 포장도로가 나왔다. 마르코와 작별의 시간이다. 서로의 안전을 기원하며 헤어졌다. 이제 플리트비체는 불과 15km를 남겨뒀을 뿐이다. 플리트비체에 슈퍼가 없다기에 식량을 충분히 보충했다.

<어째 상태가. 이러니 재포장을 하지>

  근처의 한 성당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다. 결혼식을 잠깐 보고 가려는데 아무래도 날씨가 불안한게 비가 쏟아질 듯 하다. 일단은 빨리 가서 등록도 하고 숙영지를 알아봐야겠다.

<결혼식이 열리던 코레니차의 성당>

  이윽고 플리트비체에 도착. 주위를 살펴볼 여가는 없다. 가장 먼저 플리트비체 호수공원(Plitvička Jezera) 근처의 Mukinje Sports Centre Gym으로 향해 등록을 마치고 기념품을 받아들었다.

  다음 할 일은 숙소선정. 접수처에서 알려준 정보로는 가장 가까운 캠핑장이 10km 가량. 내일 아침일찍 와야하는데 길에서 힘 다빼겠다. 그러나 예상대로 주위 숙박업소는 최소 40유로정도. 근처에 텐트를 칠 만한 공간도 없다. 숙박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마을이니 함부로 텐트를 칠 수도 없고 어쩐다?

  결국 한 방갈로에 10유로에 캠핑을 협조했다. 내 텐트에서 자는데 10유로라니! 그래도 온수가 나오는 샤워장은 물론 Wi-fi까지 사용할 수 있고 장시간 자리를 비워도 안전하니 여기서는 최적의 선택인 셈이다.(주행거리 70.71km, 누적거리 9,888km)

<10유로짜리 7성급 텐트 알 아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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