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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Croatia)

145. 플리트비체 호수와 신선(神仙)의 선물

  마라톤의 후유증이 제법 심하다. 하루가 지났음에도 움직이기 힘들 정도다. 결국 플리트비체(Plitvička) 호수 방문은 하루 연기하기로 했다.

  그놈의 호수한번 가기 힘들다. 아주 별로기만 해봐라. 절대 가지 말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퍼뜨릴테다.

  반나절을 누워있다가 이대로 있을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자전거를 끌고 나섰다. 걷기는 힘들어도 페달을 살살 밟는정도는 가능하다.

<플리트비체 마을길>

  약국에 가기 위해 지나왔던 가장 가까운 마을 Korenica 갔다. 가깝다고 해도 15km.

  약국에서는 또다른 난관을 겪었다. 예상대로파스 전혀 못알아듣는다. 우리말로도 설명하기 힘든 아픈 느낌을 대체 어찌 영어로 표현하나? 우여곡절 끝에 젤형 하나를 구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부프로펜이라고 한다.

  참고로 성분명이나 간단한 의료용어를 알고 있으면 유용할때가 있다. 타이레놀을 모르는 약사(놀랍게도 사실이다. 무엇을 봐도 이상하지 않던 나라 인도에서)아세트아미노펜 안다. 반창고나 붕대 종류는 플라스터라는 용어를 쓴다. 하긴, 반창고를스티커 밴드라고 표현했으니 누가 제대로 알아들을까.

  이부프로펜 덕분인지 시간이 약이었는지는 알수없으나 다음날에는 상태가 조금 호전됐다. 이만하면 드디어 플리트비체를 탐사할 있다. 호수에는 자전거 반입이 안된다니 등산스틱을 챙겨가야겠다.

<플리트비체 호수의 두 입구를 왕복하는 버스 열차><드디어 플리트비체 호수 등장>

  마침내 도착한 플리트비체, 입장하자마자 호수가 반겨준다. 플리트비체는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해주는 했다. 날씨도 좋았고 반짝반짝한 호수는 그대로 한폭의 그림이다.

<플리트비체 선착장>

  호숫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누워 햇살을 즐기고 있다.

  우스운건 서양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햇살을 맞으려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모자에 팔토시로 꽁꽁 싸매고 다닌다. , 그래도 중동보다는 나은편이지만 조금 이해하기 힘들다. 적어도 이곳의 햇살이 한국보다 강렬한 같기 때문이다.

<호숫가의 모녀><이런 보트를 저어도 재미있겠다>

  입장권에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페리와 개의 입구를 연결하는 열차 티켓이 포함되어 있다. 덕분에 오랜만에 페리를 타고 호수를 건넌다.

<이름모를 자그마한 섬을 지나>

  호수 반대편에는 수많은 조그만 폭포가 나타난다.

  우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Kravice에서 듯한 폭포가 셀수없이 많고, 호수 사이 사이를 연결하는 나무다리 덕분에 호수를 가까이서 즐길 있었다.

<나무다리에서 호수를 즐기는 사람들><호수와 폭포 위를 걸을 수 있다>

  입이 벌어지는 풍경이다.

  물 색은 투명했다가 하얗다가 새파랗기도 하고 초록빛 때로는 검을때도 있다. 종종 호수에는 쓰러진 고목이 속에 녹아들어있다. 생명을 다하였으나 을씨년스럽지는 않았다.

  물에 잠긴 나무 한그루마저 자연스럽다. 거기에 나무가 없다면 호수가 심심할 것이고, 젖고 썩어가는 나무를 건져낸다면 대들보는커녕 장작으로 쓰기도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적재적소에 이렇게 설치할 있을까?

<나무가 드리워진 호숫가>

  아마 장자(莊子) 여기에 들렀다면 도끼에 찍힐 일도 없고, 아무짝에 쓸모없는 나무를 보고 좋아하며 근처에서 낮잠을 잤으리라. 어쩌면 나비가 되어 이곳을 날아다녔을 지도 모를일이다.

<호수에 녹아든 고목><소요유(逍遙遊) 중인 커플>

  하지만 멋이라고는 찾아볼 없는 메마른 감성은 멋진곳에서의 낮잠을 허락하지 않았다. 폐장 전에 조금이라도 많이 돌아봐야 한다는 압박뿐이다.

<수경재배 현장>

  그나마 다행인건 왼발이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아픈게 다행스럽다니!

  걷는게 느려진 대신 자세히 보이고 많이 느껴진다. 많이 보지는 못하지만 많이 즐긴다. 만일 상태가 좋았다면 성큼성큼 걸어 절경을 모조리 지나쳤으리라.

<아, 호수에 들어가고 싶다>

  걷다 힘들때쯤 벤치가 보이고, 벤치에 앉아 있으면 따뜻한 햇살과 시원함 바람이 불어오고, 사이로 흐르는 소리와 새소리,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소리까지 들려온다.

  낙엽 속에는 낯선 설치류도 돌아다닌다. 통통한 볼과 무언가 오물거리는게 다람쥐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귀여운 녀석이다. 보호색으로 위장한 이녀석도 무심히 지나쳤다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넌 정체가 뭐냐><가냘픈 나무 그림자>

  주위는 온통 푸르다. 어느새 여름이 왔구나 싶다. 그동안 가꾸어진 수많은 정원을 보아왔지만, 대체 어떤 조경가가 이런 만들 있을까?

<인위적으로 이런 걸 만들어낸다고?>

  . 플리트비체를 어떻게 설명해야 ? 탄산수소칼(Ca(HCO3)2)이 물과 만나 석회화 호수? 수십개의 작은 폭포와 호수를 나무들이 둘러 공원?

  내 능력으로는 플리트비체를 도무지 묘사할 도리가 없다.

<계단형 폭포>

  말과 뿐만 아니라 사진도 마찬가지다. 오묘한 빛의 변화를 도무지 카메라로 담아낼 없었다.

  운좋게 나온 컷을 건질수는 있겠지만 이런 사진이 수백장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느낌, 그리고 푸른빛이 전해주는 고요함과 속의 에너지를 대체 어떻게 표현한단 말인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물의 향연><갈대밭, 이 갈대는 뻣뻣하고 잎이 칼날처럼 날카롭다>

  유일한 설명 방법은가서 직접 보라 . 언젠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보지 않은 자는 보지 않았기에, 자는 보았기에 말할 없다는 표현을 본 기억이 난다. 사실 석굴암을 묘사한 것이지만 플리트비체를 설명하기에도 이상 적절한 말이 없는듯하다. 

<플리트비체 산책로><부조화, 이런 모델은 배경이 아깝다>

  플리트비체는 요정이 산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현지인이나 외국인들로부터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홍보를 목적으로 쓰인 안내자료에서도, 혹은 직원들도 요정이야기는 금시초문인 했다.

  반면 fairy-tale(동화, 믿을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이라는 표현은 보았다. 혹시 fairy-tale fairy(요정), 그리고 요정이 산다고 와전된 것은 아닐까? 나름대로 가설을 세워보지만 근거는 없다.

 확실한건 직접 플리트비체는 과연 fairy-tale 곳이며 fairy 마리 돌아다닌다고 해도 그럴듯한 곳이라는 것이다.

<요정 한두마리쯤 나타나려나?><또다른 선책장과 페리>

  다시한번 페리를 타고 깊숙이 들어갔다.

  폭포는 무릎까지 오는 작은 폭포부터 몇층 높이까지 작아졌다 커졌다 한다. 위치에너지가 폭포가 강렬할 하지만, 작은 폭포의 함성도 만만치 않다. 폭포가 받쳐주는 화음 사이로 이름모를 풀벌레들이 합창하는 곳이다.

<운동에너지로 승부하는 작은 폭포>

  한참을 호수에서 보낸 다시 아스팔트 위에 서니 환상의 세계에 다녀온 기분이다. 요정이 산다는 플리트비체는 정말 신선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곳이었다. 복숭아나무가 없는게 다행이다.

  현실로 돌아왔으나 다행히 도끼자루도 Wing 썩어있지 않았다.

<플리트비체에서 가장 높았던 폭포><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하네>

  반면 2~3시간이면 본다던 플리트비체는 하루 종일을 요구했다. 시간가는줄 몰랐으니 신선놀음을 한건 맞구나.

  과연 플리트비체는 입장료와 숙박비, 그동안의 고생이 아깝지 않은 곳이었다. 만약 날이 흐렸던 전날 왔다면 실망만 안고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가장 알맞은 시기에 적당한 컨디션으로 즐긴 것이다.

  이곳 역시 크로아티아에서는 마치 편의점 간판 보듯이 흔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다른 폭포>

  플리트비체에서 하나의 수확이 있다.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선택을 강요받았다. 한정된 시간에 가고싶은 곳은 많아 동선이 복잡했다. 물론 즐거운 여정이었다. 잊지 못할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었고 좋은 친구들과의 만남도 있었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부분도, 상황에서는 최선이었다고 자위하면서도 포기해야 했던 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쓸데없는 미련은 나를 짓눌렀다. 자유로운 여행에서 욕심에 의해 자유롭지 못했다.

<보는 것 만으로도 심성을 차분하게 하는 플리트비체 호수>

  뜻하지 않게 플리트비체 마을에서 4 5일간 묶여 있으면서, 부득이하게 천천히 다니게 되면서 비로소 미련을 떨칠 있었다.

<고요한 플리트비체 호수>

  지나간 선택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 주어진 기회를 상황에 맞게 즐기는 방법. 이게 바로 플리트비체 신선(神仙) 금도끼와 은도끼 대신 내게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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