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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151. 자그레브 알아가기 군수 청소년회관(Logistic Youth Center)에 머무르면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LYC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저렴한 숙박비와 편한 시설로 인해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또 한번 들어오면 블랙홀 마냥 계획 이상으로 머물고 가는 친구들이 많다. 그러던 중 심규범 군에게 연락이 왔다. 이 친구는 해병대를 전역하고 해외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다가 SNS를 통해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당시 나는 사용이 익숙하지 않았고 자주 로그인하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내가 군수 청소년회관으로 옮긴 현충일에 다시 연락을 준 것이다. 크로아티아(Croatia)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 머무르고 있다면서……. 무심하게도 거의 반년동안 답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연락을 주다니. 진작 알.. 더보기
144. 플리트비체 마라톤 - 크로아티아 미녀 앞에서 바지를 내리다니 애당초 플리트비체(Plitvička)는 예정에 없었다. 꼭 가보라는 추천을 많이 받았지만 입장료가 만만치 않다.(6월 성인기준 110쿠나 약 23,000원) 입장료 뿐만 아니라 주변에는 저렴한 숙소도 없다. 폭포는 Kravice에서 보았으니 그걸로 만족할 셈이었다. 사라예보(Sarajevo)에서 비로 발이 묶여있던 중, 플리트비체 마라톤을 알게 되었다. 올해로 29회째인 유서깊은 대회다. 하프코스 참가비는 120쿠나(약 25,000원). 플리트비체 호수공원 입장권은 물론이고 기념 메달 및 티셔츠, 경기 전날 파스타 파티와 경기 후 중식까지 제공한다. 이정도면 거저나 다름없다. 경기가 6월 1일이니 일정을 잘 잡으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참가신청을 하려 했으나, 이미 접수기간은 열흘이나.. 더보기
096.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한 페이지 니쉬(Niš)는 수도인 베오그라드(Beograd)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는 흥미롭고 편안한 곳이었다. 사람들도 하나같이 친절했다. 세르비아는 유독 생활체육이 활성화된것 같다. 특히 유럽국가답게 축구가 인기인듯 했다. 지나오는 길에 여러 차례 축구장을 보았고, 거기서 잔 적도 있었다. 니쉬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자전거 정비를 위해 돌아다니면서 Čair 종합운동장에서 축구 클럽을 발견했다. 하루는 종합운동장 근처를 산책하는데 근처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울림이 있는걸로 보아 실내인것 같다. 소리나는곳으로 가 보니 예상대로 배구장이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배구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경기 진행이나 분위기로 보아 아마추어 팀인것 같다. 하지만 입시를 위한 체육이 아닌, 생활 속에서 친구들과 우정을 다지고 .. 더보기
093. 세르비아의 11월 11일. 그리고 Ivan과의 만남 니쉬(Niš)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전거 정비였다. 먼저 자전거 정비를 위해 인터넷을 이용, 자전거 가게 몇곳의 위치를 확인하고 호스텔을 나섰는데 모조리 문을 닫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호스텔에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11월 11일. 국경일이라서 대부분의 가게가 쉰다는 것. 무슨 국경일이냐고 물어보니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한 날이며 1차 세계대전 종전일이라고 한다. 아하, 1차 세계대전에 세르비아가 깊이 관계되어있었지.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세르비아가 완전한 독립을 얻었으므로 기념하는가 보다. 덧붙여 우리나라에서도 11월 11일은 의미있는 날이다. 바로 대한민국 해군 창설기념일!!! 손원일 제독은 1945년, 선비 사(士)자가 두 번 겹치는(十一) 11월 11일을 기해 바다의 신사-대한민.. 더보기
086. 베오그라드로. 그리고 여행의 위기 달마와 헤어지고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Beograd)를 목표로 주행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혼자 달리는 길이다. 세르비아에서 만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페달을 밟아 보지만 어째 속도가 나지 않는다. 세르비아 북부는 유독 호수가 많았다. 호수가 인상적이었던 Backo Gradiste의 경치를 보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해가 많이 기울었다. 잠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어째 마음에 드는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조금만 조금만 하며 더 가려는데 어느새 어둑어둑 해지고 대충 아무데서나 자기로 했다. 그동안 운 좋게 너무 편한 잠자리에서 익숙해져서 그런지 지붕없는 들판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호수마을 Backo Gradiste를 3km정도 벗어난, 추수가 끝난 밭에 들어가 잠자리를 준비한다.(주행거리.. 더보기
068. 이스탄불의 휴양과 UCC 촬영 신밧드 호스텔로 숙소를 옮긴 후에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네팔 포카라에서도 만난 해병대 전우 재학씨. 세계 여행하던 건부장님 건우와 상하씨와 함께 이스탄불 휴양을 시작했다. 이스탄불의 관광 명소인 구 시가와 신 시가는 어느정도 둘러 봤고, 여유있게 움직이던 장기 여행자들과 어울리면서 나 또한 덩달아 여유를 갖게 되었다. 출발을 차일 피일 미룬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지갑 도난 이후 약간의 회의감도 들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또 방학을 맞아 호스텔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였다. 바로 신용카드. 지갑의 다른 것은 포기했으나 어쨌든 신용카드는 필요했고, 앞으로 갈 유럽은 학생할인이 많다고 한다. 친구 성재를 통해 신용카드와 국제학생증을 재발급 받고.. 더보기
065. 하얀 구름의 나라 터키 얼마나 지났을까? 자다 깨 보니 터키 이스탄불 사비하 굑첸(Sabiha Gökçen) 공항에 도착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입국장으로 향했다. 입국 심사를 첫번째로 받고 수화물을 찾기 위해 기다렸다. 그런데, 자전거를 넣은 가방 한 쪽 모퉁이가 찢어져 있는게 아닌가? 앞 포크 끝부분이 드러나버렸지만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만원짜리라도 한 장 보상받을까 해서 클레임 창구로 갔다. 결국 A4 한장을 받았을 뿐 아무 소득은 없었다. 사비하 굑첸 공항은 트롤리가 유료였다. 1달러 혹은 2터키리라를 요구한다. 공항만 빠져나가면 되지만 도저히 들고 다닐 무게와 부피가 아니므로 어쩔 수 없이 1달러를 지불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은 새벽 2시인데, 공항에는 아무도 자는 사람이 없다. 공항 노숙을 많이.. 더보기
053. 두바이의 좋은 만남과 슬럼프 느닷없이 아랍 에미레이트에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 이란 비자 취득이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주말이 지나자 마자 이란 영사관에 찾아갔다. 이란 영사관은 숙소였던 오픈 비치 근처라서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영사관에 들어서니 대기인원도 거의 없었다. 예감이 좋다. 번호표를 받고 마침내 내 차례. 창구 직원은 여권 표지를 보자마자 별 질문도 없이 "No" 서울에서 받으라고 한다. "너같으면 비자 받으려고 서울 가겠냐?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었더니 메모지에 SADAF라는 이름과 전화번호 하나를 적어 준다. 해당 여행사를 통해서 서류 접수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다시 두바이 크릭을 건너 SADAF라는 여행사를 찾아갔다. 직원은 친절하였으나 대답은 원하던 답이 아니다. 서울의 이란 대사관에 서류를 요청해야.. 더보기
050. 공포의 아랍 에미레이트와 샤르자 공항 네팔에 갖혀버렸다.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인도와 중국 모두 비자가 없고 결국 비행기로 네팔 탈출을 결정. 한 달 생활비도 함께 내 주머니를 탈출한다. 이후 희망 목적지는 이란. 이란은 여러 여행자들로부터 좋다는 말을 너무도 많이 들었고, 또 어릴때부터 상상 속에 존재하던 페르시아 제국이 있던 곳이다. 저가 항공을 알아보니 대부분 아랍 에미레이트(United Arab Emirates; UAE)를 경유. 가장 저렴한 Air Arabia를 선택했는데, Air Arabia는 샤르자(Sharjah)라는 곳을 모항으로 사용한다. 네팔에서 이란을 간다면 카트만두-샤르자, 샤르자-테헤란 이런 식이다. 어차피 두 번 비행할거, UAE에 머물면서 아랍세계를 좀 둘러볼 수 있을까? 저가 항공이라지만 출발이 임박하여 예약하니.. 더보기
046. 토룽 라(Thorung La)에 올라서서(안나푸르나 라운딩 3) 4. 8. 여섯째 날인 이날은 고도 적응을 위해 하루 쉬어가는 날이다. 밀린 빨래를 하고 마낭(Manang) 마을을 둘러봤다. 오후에는 강가푸르나 근처의 Chongkor 뷰포인트로 향했다. 뷰 포인트는 석성이 있는데 여기에 진을 치고 화살을 쏘면 어떤 적도 막을 듯 하다. 뷰포인트 위로 조금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얼마 못가 진흙때문에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지도를 펼쳐 위치를 확인 해 보니 대략 3,840m정도 되는 듯. 이정도면 고도적응 완료다. 산에 눈이 녹으면서 진흙탕이 되어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괜히 높이 올라온 듯 하지만 기가막힌 전망이 모든것을 이해시켰다. 4. 9. 일곱째날이다. 일찍 일어났으나 10시가 되어서야 마낭을 떠났다. 이유는 단지 추웠다. 고도가 높아지다 보니 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