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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IH)

131. 사라예보의 장미

  지긋지긋하게 내리는 비에 발이 묶였다. 그 동안 기상과 경로 등 이런저런 정보도 검색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각종 준비를 하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건 자전거 정비. 프론트 랙이 늘 말썽이었다. 그동안 두 차례나 용접을 했으나 또 다시 부러져 버렸다. 오흐리드 조선소에서 만들어 준 보조 지지대에 케이블 타이를 칭칭 감아 겨우겨우 버텨오던 중이다.

<사라예보 자전거 가게>

  다시 용접을 해도 오래 못버틸거고, 보조 지지대도 얼마나 버틸지 의문이다. 결국 튼튼한 랙을 구입하기로 했다.

  마침 26유로에 괜찮아 보이는 물건을 발견했다. 한눈에 봐도 기존보다 굵고 용접부위도 튼튼해 보인다. 큼직한 U형 볼트를 사용한 고정 방식도 마음에 든다. 파이프형 구조이므로 잘 휘지도 않을 것이다. Wing에 프론트랙을 장착하고 사이드미러까지 구입했다. 더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겠지?

<새로운 랙 장착, 기존 랙보다 확실히 튼튼해 보인다><그래도 바이크와 비교하면 초라하다. 러시아 부부 여행자>

  다음은 비상식량 구비. 비상식량이라고 해 봤자 대부분 즉석 수프류 또는 라면이다.

  Maggi 라면은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싱겁고 어딘가 허전하다. 파, 양파 등을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뿌려봐도 맛있지는 않다. 그저 배를 채울 용도. 게다가 크기는 한국 라면의 40%정도 되려나?(약 50g정도)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다행히 알바니아 만큼은 아니지만 물가가 싼 편이다. 과일도 저렴해서 오랜만에 딸기도 먹을 수 있었다.

  세르비아에서 자주 먹었던 플예스카비차(Pljeskavica)도 눈에 띈다. 3마르크(약 2,000원)로 세르비아보다는 비싸지만, 두툼한 고깃덩이가 들어있으니 영양 보충한다는 생각으로 하루 1개씩 섭취한다.

<거대한 플예스카비차>

  든든한 플예스카비차도 좋지만 역시 비오는 날에는 따뜻한 칼국수가 제격이다. 물론 BiH에 칼국수가 있을 리 없고 밀가루로 직접 만들기는 귀찮지만 방법은 있다.

  수퍼에는 여러 종류의 파스타가 있다. 그 중 납작한 파스타를 골라 푹 삶고 파, 양파, 애호박, 감자, 버섯, 계란 등을 넣고 끓이면 그럴듯한 대체제가 된다.

<파스타를 이용한 칼국수 한 그릇>

  유사 한국음식을 잘 먹고 있지만, 가끔은 진짜가 그리울 때가 있다. 마침 호스텔에서 만난 스코틀랜드 여행자 하니스와 엠마는 너무 맵다면서 한국 컵라면을 줬다. 와! 거의 반년만에 느끼는 이 진한 MSG맛! 신토불이. 역시 한국음식이 최고다.

<라면을 선사한 하니스와 엠마>

  계속 비가 온다고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알고보니 문제는 더 심각했다. 발칸반도에 120년만의 집중호우로 보스나 강과 사바 강이 범람하여 많은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사바 강 유역 세르비아 접경지대와 Zenica에는 수재민이 발생하고 심지어 인명 피해까지 있었다고 한다. 제니차는 사라예보(Sarajevo)에서 불과 80여 km 떨어진 곳이다.

<물에 잠긴 도로. 대체 왜 도로 포장을 비오는 날에 하는걸까?>

  홍수 얼마 전에는 사라예보 북북동 약 100km에 위치한 Tuzla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있었다고 한다. 외교통상부에서도 투즐라 지역 방문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Tip. 국제정세가 자주 변하니 외교통상부의 해외안전여행을 수시로 참조하는게 좋습니다)

<거리의 태극기! 알고보니 대한민국 영사관(Maršala Tita 거리)>

  안그래도 갈 길이 먼 이 나라. 정치적 불안정, 경제 문제로 인한 시위에 홍수까지. 엎친데 덮친격이고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단지 벽 하나였던 시절>

  그러던 중 사라예보에도 무료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Tip. 매일 16:30분 라틴 다리 앞 insider라는 간판 앞에 모여서 약 2시간 가량 진행됩니다. http://sarajevoinsider.com 참조)

<라틴 다리 건너편 At Mejdan>

  이번 가이드는 Srevrenice라는 활발한 친구였다.

  사실 대부분의 명소를 이미 둘러 봤지만,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듣고 덕분에 BiH와 사라예보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수없이 지나친 Likovna akademija(미술 학교) 앞의 독특한 다리는 이 학교 학생들이 설계했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미술학교와 다리의 야경>

  BiH의 경제 상황은 열악하다고 한다. 국민의 1/3이 실업자이며, 평균 월급은 400유로(약 60만원)가 채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10배 이상의 소득을 올린다고 성토한다.

  BiH의 화폐단위는 마르크이며 보조단위로 페니를 사용한다. 나라의 경제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1마르크는 700원 정도이다. 구 유고슬라비아(Yugoslavia)의 세르비아(약 12원)나 마케도니아(약 25원) 디나르는 물론 크로아티아 쿠나(약 200원)에 비교해도 턱없이 비싸다.

<목조 주택이 남아있는 사라예보>

  알고보니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1국가 2체제의 국가를 만들었으나 정부마다 경제력 차이도 있고, 함부로 통합 화폐를 발행할 경우 가치가 폭락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화폐발행이 쉽지 않았다. 자국 화폐가치를 믿을 수 없으니 오히려 민족별로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 화폐를 선호하는 경향까지 보였다.

<스릅스카-세르비아계를 상징하는 정교회 성당 Saborna crkva>

  따라서 중앙 은행에서는 안정적인 독일 마르크에 1:1 대응하는(Convertible) 화폐를 발행한다. 이름 역시 Konvertibilna marka(스릅스카에서는 Конвертибилна Марка)로 독일 마르크와 같다는 뜻이다.

  에휴. 복잡한 정치 상황에 의해 자국 통화조차 외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그런데 BiH의 지폐는 색상도 디자인도 마치 장난감같다. 경호형님은 부루마불 게임의 지폐같다고 했으며 물론 나도 공감이다.

<장난감 같은 BiH 마르크와 페니>

  경제에 무지한 내가 이해한 BiH 1마르크란 무조건 독일 1마르크로 바꿔 주겠다는 중앙 은행의 보증서 정도다. 물론 독일 은행에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겠지만. 그리고 정작 독일은 통화를 유로화로 바꿔버렸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몬테네그로나 슬로베니아처럼 유로를 사용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 하지만 EU(유럽연합) 소속도 아닌데다 유로존의 경제수준을 따라갈 수 없다. 함부로 유로를 도입하면 인플레이션이 따른다고 한다.

<재래 시장 Pijaca Markale>

  하긴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은 EU 소속이지만 자국 화폐를 갖고 있었다. 코소보처럼 EU와 무관하게 유로를 통화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는데 왜 굳이 마르크를 사용할까?

<트램길처럼 복잡하게 얽힌 BiH의 상황>

  내 결론은 국가의 입장 차이다. 코소보의 유로는 EU가입을 위한 의지의 천명이지만, BiH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어쩌면 이 허술해 보이는 마르크는 독일 마르크에 대한 보증서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발행한 한 화폐를 통해 BiH라는 복잡한 나라를 하나로 유지시키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혹시 러시아 차르? Tzar's Mosque>

  인상깊은 건물도, 경제 상황도 좋지만 투어의 핵심은 역시 보스니아 내전이었다.

  그가 알려준 것 중에 Sarajevo Roses라는 게 있다. 사라예보의 장미? 혹시 BiH의 국화가 장미인가?

<나는 사라예보의 고양이>

  알고보니 사라예보의 장미는 꽃과는 전혀 상관 없었다. 포 사격으로 파괴된 아스팔트를 붉게 메꾸어 보존하고 있었다. 아마 그날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일 것이다. 이런 것은 시내 곳곳에 있으며 사라예보의 장미라고 부른다.

  검붉은 피의 흔적을 장미로 치환시킨것이다. 이런 시적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왜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도로에 피어난 사라예보의 장미>

  전쟁 중 세르비아계나 크로아티아계는 피난을 갈 수도 있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무슬림은 전혀 기댈 곳이 없었다. 크로아티아계와 잠시 손잡기도 했지만, 금세 서로 싸웠고 결국 무슬림들은 가장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가톨릭 성당을 나서는 무슬림 아가씨>

  어린이들도 전쟁의 참혹함을 피해갈 수 없었다. 마지막 방문지는 Spomenik ubijenoj djeci Sarajeva 1992-1995다. 이곳은 사라예보 포위 기간 중 학살당한 어린이들을 추모하고 파시즘을 경고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어린이들을 추모하는 Spomenik ubijenoj djeci Sarajeva 1992-1995>

  티벳의 마니차와 같이 생긴 원통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현재는 500여명이지만 신원 확인이 완료되면 2,000명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분수대 테두리는 탄피를 녹여 만든 것이다. 유리 조형물 역시 전쟁기간 중 파손된 유리창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희생자 명단이 적힌 원통>

  사라예보는 어디서나 전쟁의 흔적이 느껴진다. 총탄 자국이 자욱한 건물 벽면에서도, 도로 위의 장미에서도, 곳곳의 묘지와 추모시설까지.

  과거 유고슬라비아가 잘 나가던 시절.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를 통해 수교도 없던 이곳에 방문한 이에리사 선수는 과연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산으로 둘러싸인 좁은 지형은 그대로겠지만 건물에 총자국은 없었을텐데. 그때는 각 민족이 조화롭게 보였을까? 혹시 그때는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라고 모든것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신 시가지의 쇼핑몰. 역시 뒤에는 산이 보인다>

  원래는 지뢰밭이라는 이야기와 시위 소식 때문에 올 계획도 없었던 BiH.

  크로아티아의 비싼 물가에 갑작스레 피난하듯 넘어 왔으나, 아름다운 경치와 친절한 사람들로 인해 BiH가 좋아졌다. 그리고 BiH의 슬픈 역사를 알게 될 수록 애틋하고 뭔가 이 나라에 도움이 될 길이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학살의 상징? 애꿎은 스머프는 왜 교수형을 당한걸까>

  거리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적십자 봉사단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어린이 난치병 극복 기금 마련을 위해 작은 실(Seal)을 팔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그들을 돕기 위해 실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Koševo 언덕에 위치한 Klinički centar를 알게 되었다.

<사라예보의 적십자 봉사단>

  다음 날, 곧바로 Klinički centar로 갔다. 이곳은 상당히 넓은 의료타운인데 곳곳에 놓인 UN 컨테이너는 역시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구호물자 수송용 컨테이너?>

  적십자사를 찾아 서성이는데 마침, 한 친구가 위치를 알고 있다면서 자가용으로 직접 데려다 줬다. 계단을 올라가니 벽에 걸린 앙리 뒤낭의 초상. 바로 찾았구나.

  여의사가 맞아주었는데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의사선생님이 어찌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실까? 알고보니 의료용어는 독일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지나가던 다른 직원의 도움으로 문진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제 나와 BiH는 혈맹>

  헌혈에 소모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BiH는 헌혈에 주거 등록이나 몇 개월 이상 체류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긴 피를 직접 검사하면 될 테니. 정책의 느슨함음 그만큼 많은 혈액을 필요로 한다는 뜻인가 보다.

  헌혈 시설은 깨끗하지만 낙후되었고, 텅텅 비어 있었다. 하긴 이 외딴곳까지 찾아오려면 많은 수고가 필요할테니. 한국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운영하면 좋을텐데.

  그 흔한 지압대 하나 없어서 붕대를 직접 감아 지압한다. 하지만 초라한 시설에서도 모든 직원들은 친절했고, 자신의 일을 즐기고 있는 듯 했다.

<간식을 즐기며 지압하는 중>

  헌혈이 끝나니 의료보험증과 비슷하게 생긴 헌혈카드를 만들어 줬다. 헌혈증에는 성과 이름 사이에 아버지 함자를 기입한다. 음. BiH에서 다시 헌혈할 수 있을까? 나한테는 필요 없는 카드다. 하지만 이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특별한 기념품이다.

<헌혈 카드와 헌혈증>

  기부권도 문화상품권도 못 받았지만, 5월 12일은 여행 중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

  20년 전, 사라예보에 검붉은 피가 장미로 피었다. 이제 또 다른 피의 장미를 피워야 할 순간이다. 고맙게도 나 역시 장미 한 송이를 얹을 수 있었다. 내 피로서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많은 좋은 기억을 선사한 BiH. 하루속히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Klinički centar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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