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밖에서는 하루종일 폭죽 소리가 들린다. 새해를 이렇게 맞이하나보다. 폭죽은 하늘로 쏘아올리는 것보다 길에 던지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작은 폭죽을 던지면 몇초 후 터지는데, 가끔 아파트 베란다에서 도로를 향해 투척하는 녀석이 있어서 주의해야한다.
2014년 새해를 세르비아 니쉬에서 맞았다. 니쉬 시티 센터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차량 진입을 통제하고, 대형 무대를 세워 공연이 한창이었다.
<니쉬의 새해맞이 공연>
무대 아래 관객들도 흥겨워서 춤을 추고 Free hug를 하며 Happy new year을 외친다.
<안전한 축제를 위해 고생하는 구급대원과 경찰>
그동안 길에서 술 마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이날만큼은 예외였다. 저마다 캔맥주들 들고 있었고, 슬라브족 아니랄까봐 음주량도 제법 많았다. 하지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단, 한국에서 배워야 할 점은 쓰레기 처리. 공연이 끝난 거리에는 빈 캔과 깨진 유리병이 즐비했다. 시민 의식은 한국이 훨씬 낫다.
<공연히 끝난 후 쓰레기가 즐비한 거리>
그리고, 1월 5일. 드디어 오래 머무른 니쉬를 떠나는 날이다. 한동안 머물렀던 Easy Hostel은 참 편안한 곳이었다.
<니쉬에서 만난 불가리아 Venelin, 세르비아 Sofija와 함께 모노폴리(부루마불) 한게임>
마침 함께 머물던 마케도니아(Macedonia) 친구들도 이날 출발했다. 마지막 기념사진 한 장을 남기고 헤어졌다.
<마케도니아 Aco Todorovski 등과 함께. 빨간티는 맥도널드가 아니라 마케도니아>
겨울 외투 등 짐이 더 늘어서 한 가득이다. Wing에 가득 적재하고 길을 나선다.
<짐이 가득한 Wing>
이번 목적지는 코소보(Kosovo)의 수도 프리슈티나(Prishtina). 바로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 선언한 나라다. 프리슈티나행을 결심하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구글 지도는 세르비아-코소보 국경 대신 남쪽의 마케도니아로 우회하여 코소보에 들어가는 길을 제시한다. 인터넷에는 코소보에 들어갔다는 사람이 있지만 도보나 자전거로 국경을 넘은 후기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호스텔에서 만난 일본인은 코소보에 들어갈 경우 반드시 같은길로 세르비아에 돌아와야 한다는데, 나라마다 정책이 다른건지 모를일이다.
물어봐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거나 대답도 제각각이고, 주 세르비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는 테러 사건도 있었다면서 가능하면 코소보에 들어가지 말 것을 권했다.
'까짓거, 안되면 다시 돌아오지 뭐! 일단 가 보자'
<추운 날씨에도 강태공이 몰려있다>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거주 등록을 안한 것. 세르비아에서 첫날 캠핑 또는 현지인 집에 머무르는 경우 직접 경찰서에서 거주등록을 해야 하는데, 이런 규정을 뒤늦게 알았다.
(Tip. 세르비아에 입국한 모든 외국인은 24시간내에 관할 경찰서에서 거주 등록을 해야 합니다. 단, 숙박업소에서 숙영시에는 알아서 대신해 줍니다. 출국시에 거주증을 임의로 검사하고 없으면 벌금을 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길은 Merdare 국경. 복잡한 시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길에 올랐다.
<작은 교회가 있는 마을>
그런데 가는 길은 제법 힘들었다. 오래 쉬어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언덕 또한 많았다. 가장 골치아픈건 바로 땀.
날이 쌀쌀하지만 조금만 밟으면 땀이 흐르고, 두꺼운 외투를 걸치니 금세 등판이 다 젖어버린다. 젖은 옷은 부메랑이 되어 급속히 체온을 앗아간다. 그렇다고 금세 마르는 것도 아니고, 얇게 입고 달리기에는 춥다.
땀이 흐를까봐 세월아 네월아 가기에는 너무 답답하고 산길에서는 34T 카세트도 보조일 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빨리 겨울 주행의 노하우를 익혀야 할텐데…….
<낙석주의 표지판. 돌 떨어질것 같지 않은데>
여러가지 이유로 유독 속도가 나지 않았고, 가다 쉬다 반복하며 Prokuplje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드디어 Prokuplje. 얼마 멀지도 않았지만>
막 Prokuplje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빗방울까지 떨어진다.
산길과 씨름하는 새 상의는 젖었고 더 껴입기도 그렇고 그냥 있자니 춥고 여러모로 최악이다. 딱 감기걸릴듯한 컨디션.
마침 길 건너편에 작은 정자를 발견했다. 숙영할 만 한데, 이건 누가봐도 사유재산이다. 그래도 한 번 가 보자. 정자 앞 가게에 숙영여부를 문의하니 흔쾌히 허락하고서는 바로 퇴근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비오는 길에서 잘 뻔 했다.
힘든 하루였지만, 그래도 필요할때 꼭 쉴 만한 곳이 나오니 정말 다행이다.
<와! 정자 발견>
그나저나 비가 내리는 것도 있지만 하루 25.90km 주행(누적거리 7,780km)이라니!
내일은 Merdare 국경을 어떻게든 넘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세르비아 체류 가능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만약 국경 통과가 안되면 다시 돌아나와야 하기에 곤란해진다. 거주증도 없고. 뭐, 지금까지처럼 잘 되겠지. 힘내자.
밤 내내 비가 내린다. 정자 덕분에 비를 맞지는 않았지만 기상때문에 고민이다.
<비를 막아준 정자에서>
하지만 자고 일어나니 다행히도 날이 개어 있었다. 어영부영 다시 길을 나선다.
<평온한 Prokuplje 시내>
오늘 역시 산길이다. 고도 자체는 얼마 되지 않는 듯 한데 오르락 내리락 하는 코스라 제법 힘들었고, 도로 상태역시 좋지 않았다.
<거북 등처럼 갈라진 도로><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
도로는 철로와 나란히 설치되어 있는데 기차는 도무지 볼 수 없었다. 철로를 살펴보니 녹도 슬어있고, 사용한지 꽤 되어 보인다. 코소보 독립선언 이후에 열차 운행을 중단한걸까? 달릴 수 없는 철마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철마는 달리고 싶다><다리밑에 방치된 이곳은 알고보니 Bace(Баце)라는 3세기 로마의 목욕탕><잠시 쉬어간 작은 마을. 이건 사료통?>
땀을 안흘리려 하니 속도도 도무지 나지 않는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듯하다. 계속 외투를 입었다 벗었다 하며 어쨌든 거의 다 왔다. 약 10km정도만 더 가면 국경이다.
<장작을 쌓아놓은 집>
그리고 어느새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외투는 땀에 흥건히 젖어버렸다. 그때 공사를 멈춘 빈 벽돌집이 눈에 띄었다.
어떻게든 오늘 국경을 넘으려 했으나 출입국 심사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국경을 넘어도 적당히 쉴 곳이 있을지도 미지수다. 도로 상태도 열악하고, 가로등도 없는 길인데다가 세르비아와 코소보는 사이도 안좋으니 무리하는것 보다 여기서 쉬는게 나을 것 같다.
벽돌집을 둘러보니 2층이 적당해 보인다. 텐트를 치고 젖은 옷을 널어놓기 무섭게 밖은 캄캄해졌다. 참 적당한 시간에 잘 왔구나.(Rača 3km 후방 숙영, 주행거리 55.12km, 누적거리 7,835km)
<보금자리 주택 완성>
물 여분이 없어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물티슈로 대신할 수 밖에 없다. 이제는 몸에 물티슈를 갖다대기도 망설여지는 날씨. 이럴때는 팔굽혀펴기를 좀 하면 괜찮다.
라면으로 기력을 보충하고 휴식을 취한다. 예상보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 내일이면 국경을 넘겠지?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말도 많았고, 망설이기도 많이했던 곳. 과연 Merdare는 어떤 곳일까?
눈을 붙이려는데 멀리서 계속 총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일까? 신년 폭죽소리같지는 않고, 밤중에 사냥하나? 설마 교전은 아니겠지? 만약 밤길을 달렸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여기는 벽돌집이니 RPG-7이나 팬저 파우스트가 아닌 이상 안전할 것이다.
정말 적절한 시간에 안전한 휴식처가 이어지는구나. 아마 국경 통과도 잘 되겠지! 더 이상 불안함도 없이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늑대가 불어도 안 날아가는 벽돌집>
편히 잘 자고 일어났는데, 침낭이 축축히 젖어있고, 널어놓은 외투도 마르지 않았다. 이슬맺힘은 없었다. 날이 습한걸까 아니면 추위에 텐트 내 입김때문일까?
어쨌든 자리를 정리하고 출발한다. 단 10km. 편하게 생각했는데, 오르막의 연속이다. 대체 무슨 국경을 산꼭대기에 만든거야?
<오늘도 산길의 연속>
주변 경치는 좋았지만, 통행하는 차량도 거의 없고, 길가의 가게는 닫혀 있었다. 덕분에 아침부터 물한모금 마실 수 없었다. 이따금 버스가 지나다니는 외에는 차량도 주민도 만날 수 없었다.
<주변 풍경과는 달리 긴장이 넘치는 Merdare>
Merdare까지 세차례 임시 검문소를 만났다. 차량 한대와 2인 1개조 구성된 이들은 명칭은 경찰이었으나 얼룩무늬 위장복에 권총을 차고 탄창이 꽂힌 AK보총까지 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GOP의 민정경찰과 비슷한 역할인 것 같다.
다행히 나를 가로막지는 않는다. 마침내 언덕 정상. 작은 가건물에 근무서는 경찰이 보이더니 국경이 나타났다.
여권을 제시하자 목적지를 묻는다. 일단 코소보의 프리슈티나에 며칠 머물 계획이지만 다음에 갈 나라인 마케도니아라고 대답 했다. 거주증이 없어서 걱정했으나 다행히 확인하지 않았다. 또 짐을 검사하지도 않았다. 삼엄한 경비와 다르게 싱겁구나 생각하며 여권을 보는데 출국 도장이 없다.
<세르비아 Merdare 국경 앞>
설마 일본애들 말대로 다시 세르비아에 돌아와야 하는건가? 분명히 마케도니아로 빠져나갈거라고 말 했는데?
다시 물어보니 출국 도장은 마케도니아에 갈 때 받으라고 한다. 아, 역시 세르비아는 코소보를 외국으로 여기지 않는구나. 어쨌든 거의 3개월. 눈앞에는 코소보 검문소가 보이고, 마침내 블랙홀 같았던 세르비아 탈출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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