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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Kosovo)

101. 다시 새해를 세르비아에서

  다음으로 향한 곳은 그라카니카(Gracanica, Graçanicë). 프리슈티나에서 약 15km정도 떨어진 곳으로 거리도 가깝고 수도원이 볼 만 하다고 해서 방문했다.

  그라카니카에 진입하자 안개가 자욱히 껴 있었다. 마을 중앙에는 조그만 광장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세르비아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어라? 갑자기 왠 세르비아 국기지?

<마을입구 서낭당?에 걸려있는 세르비아기>

  일단 목적지인 수도원으로 향했다. 수도원 담벼락에는 특이하게 윤형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었다.

  세상에, 수도원과 철조망이라니 정말 안어울리는 조합이다. 어쨌든 괜히 친건 아닐거고, 뭔가로부터 방어가 목적이겠지? 혹시 이게 코소보에서 세르비아 정교회(Orthodox)의 현재 위상이 아닐까?

<담벼락에 철조망이 설치된 그라카니카 수도원>

  담을 들어서자 총기소지금지 표지판이 보인다. 대체 수도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수도원 뒤편으로는 주거가 가능한 공간이 배치되어 있었다.

<짚단이 쌓여있는 수도원 뒤편 민가>

  중앙의 교회 자체는 특별할 게 없는 정교회 사원이었다. 여느 교회처럼 벽면에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고, 중앙에는 제단이 놓여져 있었다.

  성화(이콘) 위에는 기부금도 놓여 있었는데 모조리 세르비아 디나르다. 왜 코소보에서 쓰지도 못할 디나르를?

<안개 속의 정교회 사원><프레스코로 장식되어 있는 사원 내부>

  수도원을 나와서 마을을 둘러보니 더 흥미로웠다.

  곳곳에는 세르비아 국기가 휘날리고, 길거리 간판은 키릴(Cyrillic)문자로 씌여있었다. 어라? 저 은행은 세르비아에서 본 듯 한데?

<키릴로 씌어있는 간판>

  혹시나 해서 ATM에 현금카드를 넣어보니 역시 세르비아 디나르를 얼마나 인출할 건지 물어본다. 동네 슈퍼에서는 유로와 디나르를 혼용한다. 덕분에 조금 남아있던 세르비아 잔돈을 모두 소모할 수 있었다.

  분명 코소보인데 이런 세르비아 마을이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프리슈티나로 돌아가는 길 안개는 더욱 심해졌다. 불과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 프리슈티나에서는 유독 안개가 자주 끼었는데, 근처의 화력발전소의 영향도 있다고 한다.

<그라카니카에만 안개가 끼어 환상의 나라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선교사님 댁에 머무르면서 며칠간 잘 쉬며 마케도니아에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출장길에 따라갔다 온 것이다. 다른 나라이지만 거리는 100km도 안되므로 자가용을 이용하면 금방이다. 또 앞으로 갈 길이므로 지형 정찰도 겸해서였다. 다행히 프리슈티나 초반의 언덕만 넘으면 크게 힘든 구간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예정된 날짜가 되어 선교사님 댁을 나섰다. 코소보에서 정말 생각도 못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게다가 사모님께서는 상당한 금액의 노자까지 챙겨주셨다. 선교사님도 넉넉한 형편은 아닐텐데 정말 받아도 되나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출발 전 사모님, 성호군과 함께>

  처음 프리슈티나에 오면서 카우치 서핑을 신청했는데 답을 받지 못했다. 일단 호스텔에 묵었고 이후 선교사님댁에 머무르다 이제 프리슈티나를 떠나는 길인데 Vladimir라는 호스트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사정상 집에 머물수는 없지만 특별한 이벤트가 있다는 말에 약속을 잡고 다시 호스텔 프리슈티나에서 조금 더 있기로 했다.

  Vladimir는 코소보에 살고 있지만 세르비아 출신이었다. 내가 프리슈티나에 도착한 날에 니쉬에 가 있었다고 한다. 일정이 완전히 엇갈렸었구나.

<얼마전까지 선교사님이 운영하시던 태권도장>

  Vladimir가 나를 부른 이유는 새해맞이 축제를 위한 것이다. 갑자기 왠 새해? 정교회는 달력을 따로 사용하는데 이날은 바로 2013년 12월 31일이라고 한다. 그와 함께 버스를 타고 축제가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흔히 양력이라 일컫는 그레고리력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만든 율리우스력을 보완한 것으로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만든 것이다.

  예전에 어디선가 이런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난다. 율리우스력은 상당히 정확했지만 수백년이 지나면서 오차가 누적되어 실제 지구 공전주기와 조금 틀어졌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어느 해의 며칠을 강제로 없애면서 끌어맞춘게 현재의 달력라는 것이다.

  율리우스력은 기독교 공인 전부터 사용했으니, 정교회도 처음에는 율리우스력을 사용했겠지? 아하, 그러면 그레고리력이 영점을 재조정할때, 가톨릭과 사이가 좋지 않은 정교회는 그레고리력을 따르지 않았구나!

<정교회는 가톨릭과 다르다. 달력조차>

  정교회력이 율리우스력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개정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정교회에서도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다. 알고보니 내가 프리슈티나에 도착한 1월 7일이 바로 정교회의 크리스마스였다. 물론 코소보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날이었지만.

  12월 25일⇒1월 7일, 1월 1일⇒1월 14일. 딱 열 세 클리크 차이구나!

  그러고 보니 이슬람도 전용 달력을 갖고 있었다. 이슬람력 9월이 라마단이었다. 자체적인 달력이 있다는 말은 별거 아닌것 같지만, 해나 달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계산할 수 있었다는 증거다.

  한국 역시 달을 기준으로 한 자체 달력을 갖고 있고, 약 보름 후가 한국의 설이라고 알려줬다. 설을 세 번 이나 맞이한다고 놀라는 Vladimir.

  버스에서 내리고 먼저 세르비아식 햄버거 플예스카비차(Pljeskavica)로 식사를 했다. 세르비아 음식까지 먹으니 진짜로 세르비아에 온 것 같다. 그리고 마을 분위기 역시 언젠가 와 본것처럼 익숙하다. 아, 해가 져서 바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이곳은 다름아닌 그라카니카였다.

<뜻하지 않게 다시 돌아온 그라카니카>

  유래를 물어보니, 수도원을 중심으로 정교회 사회가 형성되어 세르비아인들이 모여 산다고 한다. 또한 코소보에 이런 식의 세르비아인 집단 거주지가 몇군데 더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건 최근의 일이고 코소보 전쟁 당시에는 세르비아로 피난을 가야 했으며,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라카니카를 벗어나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세르비아 군인들은 코소보 사람들에게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다. 반면 그들은 그 증오심을 그대로 코소보에서 소수인 세르비아인에게로 돌린 것이었다. 그리고 희생자들은 힘없는 민간인들이었다.

  수도원 담장의 철조망 역시 테러 행위때문에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늦은 밤 휘날리는 세르비아 국기>

  그 역시 전쟁을 겪으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코소보 출신의 세르비아인으로 전쟁기간 세르비아로 이주해서 고등 교육을 받았고, 통행이 가능해지자 다시 태어나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심지어 그 고향은 세르비아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고, 여전히 위험이 존재하고 있었는데도…….

  하긴, 정치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위험하고 살기 어렵다고 모두 코소보를 등진다면 더 이상 코소보에서 세르비아인이 설 자리는 없어지겠지. 

  그래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것이다. 음, 나로서는 100%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마 이산가족과 실향민과 비슷한 기분이었을까? 아니면 일본서기에 실린, 백강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게 패한 천지(天智)왕의 탄식.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에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런 심정이었나?

  무거운 이야기는 접어두고 축제가 열리는 마을 광장으로 갔다. 무대위에서는 각종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밴드 공연. 가만보니 기타리스트가 왼손잡이다><거대한 세르비아기와 삼색 풍선으로 장식된 무대>

마침 Vladimir의 친구들도 하나씩 모여 함께하게 되었다.

구석에서는 돼지 한마리가 통채로 익어가고 있고, 와인과 세르비아 전통술 라키아를 데워서 나눠준다. 무료라서 냉큼 받아마셨는데, 와인을 데워먹는것은 처음이다. 

<따뜻한 라키아와 와인 드세요>

  돼지고기 바베큐 역시 코소보 무슬림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돼지 바베큐가 익어가는 중>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흥은 무르익어간다. 공연도 절정으로 치닫고 있고 사람들의 표정에는 설레임이 가득하다. 그리고, 마침내 카운트다운.

<세르비아 민속 춤 공연>

  9, 8, 7, 6, 5, 4, 3, 2, 1, Happy New Year!

<새해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

  정작 세르비아에서는 더 이상 정교회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코소보의 작은 세르비아. 이들에게 정교회력 설날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쩌면 세르비아인에게 있어 그레고리력은 국제 사회에 발맞춘 것일 뿐이지만, 코소보의 세르비아인에게 그레고리력은 그들 정체성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다른 나라가 되어버린 세르비아. 정교회력에 맞추어 축제를 하고, 세르비아 복장과 전통 춤을 추면서 그들의 한을 풀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세르비아 전통복장과 전통 춤이 이어진 무대>

  즐거운 축제를 마치고 거의 새벽 2시가 되어서야 프리슈티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2년 전만 해도 세르비아인들이 프리슈티나에 발붙이기도 어려웠다지만, 현재 프리슈티나는 늦은 시간에도 위험하지 않은 곳이 되어 있었다.

  제 3자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누구의 편을 들 수도 없는 복잡한 역사. 아름답게 하늘을 수놓는 폭죽을 바라보며, 세르비아와 코소보에도, 또 이 작은 세르비아 그라카니카에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모두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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