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코소보(Kosovo)

102. 코소보. 전쟁과 독립

  코소보에 대해 더욱 흥미가 생겨서 이래저래 알아보던 중 코소보 독립의 집(Independence house of Kosovo)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게다가 입장료도 무료.

  지체할 이유가 없어서 바로 달려갔다.

  코소보 독립의 집은 조그마한 건물이었다. 들어가니 Bekim이라는 친구가 맞아준다. 그는 전시물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코소보 독립의 집>

  먼저 Ibrahim Rugova라는 사람. Historical President(역사적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알고보니 코소보 독립투사로 자체적인 정부를 조직하여 활동했으며, 이곳이 바로 정부 청사였다고 한다. 하지만 독립 직전에 타계하여 실제 코소보 공화국의 대통령은 아니었다고 한다.

<코소보 독립투사 Ibrahim Rugova>

  실제 이 분의 동상이 프리슈티나 시내 중앙에 있었고, 선교사님 댁 근처에는 묘소도 있었다.

<공원 중앙에 자리잡은 Ibrahim Rugova의 묘>

  '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님 같은 분이구나!'

  한국에도 비슷한 위인이 있다고 하니, 실제 이 분의 별명이 발칸의 간디였다고 한다. 간디라는 칭호가 붙은 것으로 보아 무력보다는 외교나 평화적 방법으로 독립 운동을 했나보다.

<말끔히 단장해놓은 Ibrahim Rugova의 집무실>

  전시관 중앙에는 다양한 알바니아기가 걸려있었다.

  유래를 물어보니 하나는 오스만과 맞서 싸운 알바니아의 영웅 Skënderbeut의 기였고, 또 하나는 독립 전 코소보의 기라고 한다.

  문장 중앙에 다르다니아(Dardania)라는 문구가 씌여 있는데, 알바니아는 고대 로마에서 일리리아(Illylia)로 불리었고, 일리리아 중 다르다니아라는 지역이 현재의 코소보였다고한다.

<각종 알바니아기>

  지금 사용중인 국기는 코소보 독립 후에 제정되었으며 코소보 영토와 그 위에 여섯개의 별은 코소보 공화국을 구성하는 6개 민족을 뜻한다고 한다.

  전시관 벽면에는 코소보 전쟁과 Ibrahim Rugova의 활동 사진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Bekim은 기차에 몰려든 피난민 사진 한 장을 가리키면서 그도 전쟁 당시 여기에 있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멀게 느껴지는 코소보 전쟁이 이 사람들에게는 실제 얼마 전의 사건인 것이다.

<코소보 전쟁 당시의 사진>

  이 건물 역시 전쟁때 불탔으며, 벽에는 방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중앙의 코소보 독립 선언서까지, 이곳저곳을 자세히 설명해 준 Bekim에게 감사하며 독립의 집을 나서는데, 코소보 박물관에 꼭 가보라고 한다.

<코소보 독립사를 친절히 안내해 준 Bekim>

  다음날 코소보 박물관에 방문했다. 론니플래닛에는 €3라고 했지만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박물관은 제법 큰 규모였다.

  1층에는 알바니아 독립에 관하여 전시되어 있었고 3층은 코소보 전쟁 관련 전시물이 있었다.(2층은 미운영)

<천장에 코소보 국기가 그려진 박물관 1층 홀>

  전시물은 모두 알바니아어로 씌여 있어서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코소보 전쟁이 사건 발생 순서대로 서술되어 있었다.

  먼저 민간인 학살의 시작.

  밀로셰비치와 히틀러의 사진이 아래의 'Milosevic didn't invent ethnic cleansing. He had a good teacher.'라는 문구에 눈길이 갔다.

<밀로셰비치는 인종청소를 발명한게 아니다. 훌륭한(?) 스승이 있었으니까!>

  학살을 피해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국제사회는 이를 대서특필했으며, 십만명의 코소보 난민 수송작전이 타임지 헤드라인으로 실린다. 인접한 마케도니아에 수용소가 설치되었고, CNN, NBC 등 매스컴 취재 역시 마케도니아에서 이루어졌다.

<코소보 난민 발생과 각종 취재물>

  사건이 커지자 인종청소에 맞서 대항이 시작되었다. 바로 UÇK(Ushtria Çlirimtare e Kosovës; 코소보 해방군)라는 민병대가 등장한 것이다.

<복면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 평범한 동네 주민들>

  전시된 무기는 민병대가 사용한 것인지, 유고연방(세르비아)군으로부터의 노획물인지 알수 는 없지만, 규모로 보아 유고군의 것인것 같았다.

<전쟁당시 사용된 병기>

  AK로 대표되는 소총 뿐만 아니라 기관총, HMG, 무반동총, 수류탄, 지뢰는 물론 박격포까지. UÇK의 활동은 이미 내전으로 불릴 정도로 발전했고, 조직 이름 역시 해방군(軍)이다.

<철모, 수류탄, 고폭탄……><지금도 야전선을 연결하고 핸들을 돌리면 신호가 갈 것 같은 야전전화기><각종 박격포>

  박격포는 방열 후 편각조절이 불가능하고, 정밀한 밀(Mil) 대신, 줄자와 수포기를 이용하여 사각을 조정하는 단순한 방식이지만 비무장 민간인을 공격하기에는 충분한 화력이었을 것이다.

<단순한 구조의 구형 박격포>

  하지만 코소보 해방군 정도로 유고군에 상대할 수 없었고, 인종청소가 계속되자 결국 NATO는 코소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당시 NATO 회의장면과 코소보에 참전한 지휘관들의 사진 역시 볼 수 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비롯 토니 블레어 총리 등 익숙한 이름과 얼굴도 보인다. 어라? 해군 제독들도 보이네? 코소보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인데?

<나토 회의 모습과 참전한 지휘관들. 해군도 있네?>

  의문은 간단하게 풀렸다. 전시된 타임지 기사를 보니, 필리핀 해상에서 토마호크(Tomahawk)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함대가 아드리아해 근처에도 가지 않고 군사작전이 가능하다니!

  벽면에는 나토의 공습과 베오그라드 중국 대사관 오폭사건, 거기에 항의하는 중국 승려들의 대사관? 앞 시위. 유고편을 든 러시아의 개입과 작전 종료 후 유고군의 철수까지 일련의 과정이 타임지를 이용하여 정리되어 있었다.

<사건에 대한 각종 보도자료>

  공습이 끝나고 마침내 나토 지상군이 코소보를 점령하게 된다. 코소보 시민들은 나토를 열렬히 환영한다. 현지 신문 일리리아지에 실린 사진에는 GOD Bless America and NATO라는 문구 가 선명하고 소녀는 나토군에 꽃다발을 안기고 있다.

<미국과 나토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NATO의 개입으로 마침내 코소보 전쟁이 끝나고, 2008년 코소보는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한다.

<독립의 집에 있던 코소보 독립 선언문>

  수많은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에 알바니아기와 성조기가 휘날리고, 빌 클린턴 대통령 동상 제막식 사진도 있다. 그리고 New Born 조형물은 처음에는 노란색이었구나!

<수많은 인파가 몰린 가운데 세워진 New Born과 클린턴 상>

  그런데 박물관 한켠에는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닮은 부조 하나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 나라에도 불교가 있었나? 연관성이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설명을 읽어보니 히로시마로부터라고 씌여있었는데, 2013년 관용과 화해의 주간에 일본에서 선물한 것이다.

<히로시마에서 온 부조>

  이 박물관은 밀로셰비치와 히틀러를 비교하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히틀러와 히로이토는 2차대전 전범이며 같은 추축국이었다.

  하지만 주변국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 없이 지구 반대편에다 돌멩이 하나 선물하고 살짝 발 뺀 것이다. 간단한 외교적 제스추어로 일본은 코소보의 친구가 되었고,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로 둔갑했다.

<큰 희생 없이 나토에 준해 박물관에서 한 자리 차지한 일본>

  실제로 코소보에서 일본의 이미지는 좋은 편이었다. 분명히 이것도 외교 능력이겠지? 그래도 어딘가 씁쓸한 건 사실이다.

  코소보 박물관 그리고 독립의 집을 나서며 역사와 민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된다.

  수많은 피를 흘리고 독립을 쟁취한 코소보.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전쟁의 흔적. 이 나라가 빨리 전쟁의 아픔을 딛고 발전하기를 바란다. 

<프리슈티나 골목에 아직도 남아있는 파괴된 주택>

  다음글 ☞ 103. 코소보 시간여행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