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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Hungary)

157. 부다페스트 맛보기

  얼마나 지났을까? 소란스러움에 눈을 떠 보니 에릭(Eric)과 친구들이 도착했다. 부스스한 얼굴로 에릭과 인사를 나누었다.

  브라질 친구 에릭은 기계공학 공부를 위해 부다페스트로 유학와 있었다. 아파트에서 친구 루카스(Lucas)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으며 카우치서핑을 통해 이미 100명 이상을 초대해왔다.

<에릭과 친구들. 중앙이 에릭>

  여행 및 낯선 이들과의 만남을 즐기는 에릭의 방에는 여행 기념품과 게스트들의 감사 메시지가 빼곡했다. 한글 메시지도 몇건 보인다.

  마침 에릭은 유학이 끝나 귀국을 앞두고 있었다. 며칠 더 늦었다면 에릭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부다페스트의 모든 일정을 끝마치고 홀가분해진 에릭은 초대한 손님들과 함께 아침까지 파티를 하고 들어온 참이다.

  활발한 주인 덕분에 손님들 역시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이날도 그리스, 폴란드, 이란, 브라질, 러시아 등 세계의 친구들이 모여있었다.

<손님들로 북적이는 에릭의 거실>

  전날 밤을 샌 다른 친구들은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아직 부다페스트를 둘러보지 못한 러시아 친구 파벨(Pavel)과 함께 시내 구경에 나섰다. 에릭은 지도를 나눠주면서 부다페스트의 명소들을 하나하나 체크해줬다.

<부다페스트 동편 켈레티(Keleti) 역>

  부다페스트는 도나우(Donau) 강을 경계로 서편의 부다(Buda)와 동편 페스트(Pest)라는 두 도시가 합쳐진 도시다. 이름이 모두 특이하다. 스펠링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영어로 부다(Buddha)는 부처님을, 페스트(pest)는 중세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은 흑사병을 뜻한다. 다만 헝가리어로 두 단어의 뜻은 확인하지 못했다.

<바이다훈야드 성 입구>

  가장 먼저 향한곳은 집 근처에 위치한 도시 공원 Városliget(영어로는 City Park). 이 공원은 이름처럼 페스트 시내에 자리잡은 큰 공원으로 인공호수와 함께 바이다훈야드(Vajdahunyad) 성, 세체니(Széchenyi) 온천과 영웅 광장(Hősök tere) 등을 끼고 있어 관광지로도 인기높은 곳이다. 공원은 외국인에게는 좋은 관광지이지만 여느 나라에서 그렇듯 부다페스트 시민들에게는 휴식처일 뿐이다.

<호수를 낀 바이다훈야드 성>

  헝가리의 온천이 유명하다던데……. 오랜만에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으나 부다페스트 지리를 익히는게 먼저다. 공원을 돌아본 후 바로 영웅광장(Hősök tere)으로 향했다.

  헝가리 위인들의 청동상이 도열해 있는 영웅광장 중앙에는 멋진 천년 기념비(Millenniumi emlékmű)가 세워져 있었다.

<영웅광장과 천년 기념비>

  기념비 하단의 푸른 기마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는 헝가리를 구성한 7개 부족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마자르족이 주축이 된 헝가리는 스스로를 마자르공화국(Magyarország)이라고 부른다.

  마자르족의 기원은 다양한 설이 있지만 ‘훈(Hun)족의 나라’라는 뜻인 Hungary가 통용되는 만큼 훈족의 일파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역시 훈족에서 비롯되었다는 터키의 투르크족과도 방계인 셈이다.

  어쩐지 헝가리는 어딘가 유럽과는 이질적인 느낌이 있기는 했다. 당장 기마상 제일 앞에 위치한 아르파드(Árpád)도 동양식 갑주를 착용하고 있었다. 아르파드는 기마민족이던 마자르의 7개 부족을 이끌고 현재 헝가리 평원에 정착했다. 바다가 없고 대부분 평지인 이 지역은 유목생활을 하던 기마민족에게 최적지였으리라.

<천년 기념비 하단의 아르파드>

  열주 사이에 십자가를 들고 선 인물은 이슈트반(István) 왕으로 중세 헝가리 왕국의 초대 국왕이다. 이 왕은 헝가리에 기독교를 전파한 공로로 가톨릭 성인으로 시성되어 성 이슈트반으로 불린다. 이슈트반은 스테판(Stephan)의 헝가리식 발음이다. 이슈트반 왕부터 헝가리 복식은 동양의 색채가 없어지고 중세 유럽 느낌이 난다.

  재미있게도 헝가리 왕국은 서기 1000년에 건국되었다고 한다. 천년 기념비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라 하겠다.

  이슈트반 옆에는 역시 기독교를 전파한 성 라즐로 왕이 서 있다.

<성 이슈트반 왕과 성 라즐로 왕>

  헝가리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발칸반도의 다른 나라들과 유사하다. 로마제국에서는 판노니아(Pannonia) 속주로 불렸으며 중세 이민족(마자르족)이 왕국을 세웠고 기독교가 전파된다. 다만 헝가리는 정교회 대신 가톨릭을 받아들이면서 오스만(Osman) 제국에 맞서 서유럽 가톨릭의 최전방 방호선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결국 함락을 면치 못했으며 오스만 제국이 약화된 이후에는 오스트리아(Austria)의 지배를 받다가 대타협을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을 형성한다.

  헝가리는 이중제국 수립을 통해 형식상으로는 합스부르크 가문 오스트리아 황제의 통치를 받았으나 사실상 독립에 준하는 높은 수준의 자치를 누리게 되었다. 페스트 지구의 위풍당당한 건물은 당시의 영화를 재현하는 듯 했다.

<화려하게 장식된 페스트 지구의 아파트>

  하지만 헝가리 역사의 부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중제국이 와해되자 헝가리는 독립을 쟁취했으나 외세에 의한 독립 과정에서 많은 영토를 잃어야 했다. 마치 대한민국의 독립과정을 보는 느낌도 든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헝가리는 고토 수복을 위해 추축국에 가담하면서 다시 패전국이 되었고 소련의 점령 하에 헝가리 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로 재탄생한다. 이는 소련에 이은 두 번째 공산국가였다고 한다. 다만 공산권임에도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였다고 하며 우리나라와는 동구권에서 최초로 수교한 국가이기도 하다.

  이후 철의 장막이 붕괴되면서 현재의 헝가리 공화국이 되었다.

<시골과는 전혀 다른 느낌. 위용을 뽐내는 아파트>

  영웅광장부터 도나우강변의 에르제벳 광장(Erzsébet tér)까지는 안드라시 거리(Andrássy Utca)가 연결되어 있다. 이 거리는 각국 대사관과 오페라하우스, 명품 상점 등이 즐비한 페스트 지역의 최대 번화가다.

<헝가리 민족사 박물관>

  에르제벳 광장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이중제국 시절 건설된 부다페스트 최대의 성당인 성 이슈트반 대성당과 민족사 박물관(Néprajzi Múzeum), 부다페스트의 상징인 국회의사당(Országház)이 나온다.

<국회의사당><국회의사당 측면>

  여기서 부다 지구로 건너가기 위해 더 북쪽의 마르깃 다리(Margit híd)로 향했다. 이 다리는 부다-페스트와 마르깃 섬을 연결하는 독특한 다리로 삼거리에 놓여있는 헝가리 왕관이 인상적이었다.

<도나우강 건너편 부다 지구><마르깃 다리의 왕관>

  앞서 지나친 국회의사당은 그 자체로도 멋진 건물이었으나 부다 지구에서 도나우 강과 함께 전체를 조망하는 편이 더욱 좋았다.

<국회의사당><러시아 친구 파벨과 함께>

  또한 부다 지구에는 왕궁으로 사용되던 부다 성(Budavári Palota)이 있다. 왕궁은 언덕 위에 있었으며 그 아래로 터널이 지나고 있는게 이채로웠다.

<부다 성 하단 터널>

  이 뿐만 아니라 회전 교차로 아래로 노면전차까지 지나다닌다. 주택가에 소음과 진동이 상당할텐데……. 불편하지 않으려나?

<아파트 아래로 지나는 전차>

  왕국의 중심인 왕궁과 공화국의 핵심인 의회가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것도 재미있었다.

  어느새 날이 저물고 있어 왕궁은 다음에 보기로 하고 다시 세체니(Széchenyi) 다리를 건너 페스트로 돌아왔다. 세체니 다리는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한 최초의 다리로 이를 통해 비로소 부다페스트가 형성될 수 있었다.

<세체니 다리><세체니 다리>

  일종의 현수교인 세체니 다리 양단의 멋진 지지물은 마치 부다와 페스트의 관문처럼 보인다. 또한 다리 끝에는 사자 조각이 놓여 있다.

<세체니 다리의 사자>

  사자는 양단 좌·우 총 4마리다. 그러고 보니 마르깃 다리 앞 광장에서도 사자상을 봤는데? 혹시 사자가 마자르족의 상징인가?

<마르깃 다리 아래의 사자><에르제벳 광장의 관람차 시겟 아이(Sziget Eye)>

  세체니 다리를 건너 계속 직진하면 다시 성 이슈트반 대성당이 나타난다. 이곳은 전술한 성 이슈트반 왕을 기린 성당으로 왕의 미라를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

  대성당 역시 외관만 감상한 후 바로 Oktogon Bisztró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허기짐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안드라시 거리의 Oktogon역 근처에 있는 이 식당은 자전거를 본 에릭이 강력히 추천한 곳이다.

<에릭이 추천해 준 Oktogon Bisztró>

  그동안 관광지 및 대도시의 식당을 기피하다시피 했다. 현지음식을 맛보려면 시 외곽의 식당이 훨씬 저렴한 가격에 더 나은 편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취사도구를 갖고 있으니 직접 조리하는편이 더 낫다.

<오, 굴라쉬도 있네?>

  그렇지만 요일, 시간, 현지화폐 등의 문제로 헝가리에서는 줄곧 굶주려 왔다. 150km 이상 달린 전날밤 속도계에는 소모 열량 6,318kcal이 찍혀 있었다. 이를 보완해야한다.

  게다가 이곳은 불과 1,510포린트(약 7,500원)에 뷔페가 제공된다고 하니 한번쯤 호사스러운 식도락을 즐겨보기로 했다.

<이정도 운동량이면 한끼 7,500원도 사치는 아니겠지?>

  “나는 가장 강하고 멋진? 자전거 여행자가 된다~ 악! 감사히 먹겠습니다”

<헝그리 끝 5분전!>

  파벨은 세접시에서 멈췄으나 자전거 여행에는 가당치도 않은 분량이다. 파벨은 조그만 동양인의 식사량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나는 간만의 포식 끝에 비로소 ‘헝그리’라는 단어와 작별을 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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