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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Bulgaria)

075. 불가리아를 떠나며

  새 아침이 밝았고, 다행히 비는 그쳐 있었다. 애초 루세(Ruse)는 예정에 없었고 오늘 중으로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București)까지 갈 계획이지만, 기왕에 들어왔으니 불가리아의 마지막 도시로 루세를 돌아보기로 했다.

  루세는 걸어서도 반나절이면 돌아볼 만한 작은 도시였고, 대부분 볼거리들은 올드 타운을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관광안내소 근처 루세의 거리>

  가장 먼저 나를 반긴것은 Svobada 광장이었다.

<분수가 있는 Svobada 광장>

  잘 만들어진 광장 주위에는 오전임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광장 바로 앞에는 법원이 있었다. 이 건물은 1940년부터 법원으로 사용되었다는데, 원래는 믿기 어렵게도 수산시장이었다고 한다.

<예전 수산시장이었던 루세의 법원>

  물론 리모델링을 했겠지만, 수산시장의 놀라운 변신이다.

  올드 타운으로 이어지는 Aleksandrovska 거리를 걷는데 주위 분위기는 생기 없던 작은 마을들이나 소피아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건물들은 파스텔 톤>

  국경 근처라서 그런건지 내륙과는 확실히 뭔가 다르다. 이것저것 조각하고 복잡하게 만드는게 바로크 양식이었나? 뭐, 나는 문외한이니까 잘 모르겠다.

<세밀한 조각으로 치장한 벽면>

  날씨도 좋아서 기분좋게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어느 새 Al. Battenberg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중앙 분수를 중심으로 화단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노란 꽂을 보니 개나리가 떠오른다.

<멋진 조경을 자랑하는 Al. Battenberg 광장>

  올드 타운을 벗어나니 건물들도 다시 단조로워진다. 또한 불가리아에서 흔히 보아왔던 폐가같은 건물도 보인다.

<올드타운 외곽. 루세의 주거지역>

  주거 지역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조그만 장도 열려 있었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많다>

  얼마 더 가보니 오래되어 보이는 성당이 나타났다. Sveta Troitsa 교회다. 이곳은 17세기에 지어진, 루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고 한다.

  성당 내부는 겉보기와는 달리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는데, 의자가 배치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의자가 설치된 정교회 성당은 처음이다. 그러고 보니 돔형 구조도 아니다.

<정교회라기보다 가톨릭같은 분위기의 성당>

  내가 본 정교회 성당은 사방에 성화가 그려져 있고, 천장에는 돔이 있으며, 가운데는 넓은 홀을 그대로 두었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은 신자들을 통제하지도 않고, 신자들은 아무때나 들어와서 촛불을 붙이고, 성화에 입을 맞추고 간다. 그래서 정교회는 설교나 미사가 없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작은 도시지만 오페라 하우스도 갖추고 있었다.

<루세의 오페라 하우스><오페라하우스 근처의 주택가>

  오페라 하우스는 The heart of freedom(자유의 심장?) 광장으로 연결된다. 광장 끝의 조형물은 자유의 기념비로 기념비 위의 여인상이 자유로운 불가리아를 상징한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 아니면 공산주의?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일까?><광장 주위는 까페와 레스토랑>

  루세는 지금까지 보아 온 불가리아와는 많이 다른 분위기였으나 아름답고 매우 편안한 곳이었다. 아마 비가 오지 않았다면 이 멋진 곳에서 산책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느껴졌다.

<시계가 있는 건물 - The City Clock><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루세>

  이제 다시 길을 떠날 시간. 루세 북쪽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는데 이 강이 바로 다뉴브(Danube) 강이다. 이 강은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를 갈라 놓고 있다. 5km 정도만 가면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뉴브 다리가 있다.

  다리는 건너기 전 차량 검문소같은 곳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출국 도장을 받나보다.

  그런데 여권을 꺼내 들고 간 그곳은 교량 통행료를 받는 요금소였다. 물론 자전거는 무료. 그러면 대체 출국 도장은 어디서 받아야 하지?

  요금소 직원은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무작정 루마니아를 외치니 다리를 건너라고 한다.

  그래. 강 건너면 루마니아인데, 불가리아 출국 도장은 받아야 하잖아. 재차 물어봐도 그냥 가라는 것. 주위에는 다른 사무실은 전혀 없다.

  아랍 에미레이트에서 오만의 부라이미로 갈 때는 오만 입출국관리소가 40km가량 떨어져 있었는데, 설마 입출국관리소가 먼저 있었나? 아까 관광안내소에서는 국경에 대해 아무 말 없었는데…….

  잠시 고민하다 일단 그냥 건너가 보기로 했다. 뭐, 밀입국도 아니고, 밀출국도 문제 되겠어? 루마니아에서 여권 대충 보면 입국도장 찍어주겠지.

  루비콘 강을 건너는 케사르가 된 기분으로 일단 강을 건너기로 했다. 결국 다뉴브 다리에 진입함으로서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불가리아 여행을 마무리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다뉴브 강 도하 시작>

  이 나라는 로마시대에는 그리스 북부와 함께 트라키아 속주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7세기에 불가리아 제국이 수립되었고 14세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9세기 오스만 제국의 자치령인 불가리아 공국, 1908년에는 불가리아 왕국으로 오스만으로부터 독립한다.(독립전쟁 중 희생자를 기려 소피아에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을 지었다)

<루세에서. 저 아랍어는 오스만 제국의 흔적?>

  불가리아 왕국은 독립은 했으나 계속하여 전쟁에 휩쓸린다.

  1차 세계대전때 동맹국에 가담하여 패전국이 되고, 2차 세계대전에는 히틀러에 의해 또다시 추축국으로 참전하여 수많은 전사상자를 낳는다.

<이제는 가판대 신세가 된 구 불가리아군 정모>

  뒤늦게 중립 선언을 하지만, 소련이 침공함으로서 불가리아 왕국은 40년 만에 막을 내리고,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어 연합국으로 참전한다.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은 88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였고, 1989년 공산당이 물러남으로서 불가리아 공화국이 되었으며, 1990년 우리나라와 수교, 2007년에는 EU에 가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교이후 한국 대기업이 진출>

  불가리아어는 키릴 문자를 사용하며, 대부분이 불가리아 정교회 신자이지만, 오스만 제국의 영향으로 무슬림도 상당수 있다

<루세의 Sveta Troitsa 성당과 정교회 사제님>

  면적은 약 11만 ㎢으로 남한과 비슷하지만, 출산률 감소와 해외 취업으로 인해 인구는 약 730만명 밖에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구 공산권이라는 점으로 부정적인 생각도 갖고 있었으나 직접 만난 불가리아 사람들은 친절하고 낮선 이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큰 주유소는 대부분 무료로 Wi-fi를 제공한다>

  수많은 전쟁을 겪은 아픈 역사도 있고, 생활 수준이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작은 마을에도 공원을 만들고 여가를 즐길 줄 아는 낙천적인 사람들이었다.

  물론 어두운 부분도 있다. 인구 감소로 텅 비다시피 한 마을이나 등록도 안된 호텔 운영, 수많은 카지노는 결국 기반 산업의 미흡과 열악한 인프라의 증거가 아닐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고, 갈 길이 쉽지 않겠지만, 500년간 독립운동을 해 온 근성으로 잘 헤쳐나가리라 생각한다. 짧은 불가리아 여행을 통해 잘 모르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고, '불가리아'라는 새 친구를 얻은 기분이다.

<불가리아 자전거 여행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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