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센터 대표전화로는 문제 해결이 안되어 통장을 개설한 지점에 전화를 했다. 제반서류와 모든 계약서를 갖고 있을테니 한층 용이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점에서도 동일한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통화하는 본인의 계좌이며 기간이 만기되어 입출금 통장으로 옮기겠다는 것. 필요하면 신분증 사본 등을 E-mail이나 팩스 또는 우편으로 보내겠다고도 해도 친필 서명을 요구하는 것.
<숙소 근처의 Trg Nikole Pašića 광장>
한참 통화를 해 보니 방법이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대리인이 업무처리를 원할 경우, 자필 위임장을 체류하는 국가의 영사관에서 공증 받아 지참하면 된다고 한다.
그럼 영사관은 어디에 있을까? 알아보니 주 세르비아 대한민국 대사관이 베오그라드(Beograd)에 있었다. Novi Sad 대신 베오그라드로 오기를 정말 잘했다.
<베오그라드의 특이한 공원>
어머니를 대리인으로 위임장부터 작성. 그나마 예전에 공문을 작성해본 경험덕분에 쉽게 작성할 수 있었다. 이제 대사관으로 출발!
대사관에서는 김00 주사님이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필요한 공증은 물론, 주변 국가에 대한 질문에도 친절하게 답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라면과 음료까지 챙겨주었다.(보안 관계상 실명은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대사관에서 인증받은 위임장>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대사관을 나왔다. 이제 우체국으로. 숙소 근처에 중앙우체국이 있었다. 등기우편으로 서류를 발송하려 하는데,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보내기는 했다.
<거대한 베오그라드 중앙 우체국>
주변국은 한국 대사관이 거의 없고, 주 세르비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는 몬테네그로 영사업무를 겸임하고 있었다. 무작정 출발했다가 배송 문제나 서류 미비 등 문제가 생길 경우 대처도 힘들어진다.
다행히 호스텔이 저렴하므로 최종 처리 완료될 때 까지 베오그라드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조금 남은 현금 다 떨어지면 뭐, 여권 맡겨놓고 후불을 하던 어떻게든 방법이 생기겠지…….
<대사관에서 받은 식량. 기다리면서 감사히 먹겠습니다>
정말 여행하며 별 일이 다 생기는구나.
베오그라드에서 장기간 머물 계획이므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아, 그보다 먼저, 텐트 및 의복 빨래부터 하고.
마침 같은 호스텔에 묵고 있던 일본인 가오리로부터 좋은 정보를 입수했다. 매주 월, 수, 금요일 12시에 무료 Belgrade Walking Tour가 있다는 것. 아마 불가리아에서와 비슷한 프로그램인가 보다.
바로 참가를 결정. 다음 날 Terazijska terasa로 향했다. 그런데 여기 아니야? 지도에 찍어 준 곳은 여기 맞는 것 같은데 팀은 보이지 않는다.
<특이한 디지털 시계탑>
주위를 한 번 돌아봐야겠다. 오호. 공화국 광장(Trg Republike)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역시 이곳이었다.
투어는 광장에 서 있는 미하일로 오브레노빅(Mihailo Obrenović) 공의 청동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한때 권좌에서 밀려나 해외 망명생활을 하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암살당하는 등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냈으며, 오스만 세력을 몰아내고 베오그라드를 탈환했다고 한다.
<위풍당당한 미하일로 공의 청동상>
투어 인솔자는 Mira라는 친구였는데 베오그라드의 각 명소에 대해 갖은 이야기거리를 준비해왔다. 심지어는 전통 술 라키아까지 시음하도록 준비해 올 정도였다.
까페와 주점이 즐비한 보헤미안의 거리 Skadarlija를 지난다.
<보헤미안의 거리 Skadarlija>
마침내 베오그라드의 하이라이트 칼레메그단(Kalemegdan) 요새로 향했다. 현재는 공원으로 사용되고 있고, 다뉴브(Danuve)와 사바(Sava)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여 멋진 전망을 자랑한다.
<칼레메그단 요새><북쪽에서 온 다뉴브강, 서쪽에서 온 사바강><성벽 아래에도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보기에는 좋았지만, 기원전 켈트족이 이미 요새화하기 시작했던 이곳은 무수한 전투의 현장이었다. 터키어로 칼레는 성, 메그단은 전투를 뜻한다고 하니 이름조차 전투의 성이며,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서는 무려 115회의 전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성벽에 서서. 왜 사진만 찍으면 눈을 감을까.. 선글라스 쓰고 다녀야지>
칼레메그단에서 사바 강을 건너면 베오그라드의 신 시가지로 연결되는데, 1999년 나토(NATO)의 유고 공습 당시 다리가 폭파되는것을 막기 위해 근처에 가짜 다리를 만들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폭죽을 쏘며 교량을 위장했다고 한다.
<다뉴브 강변>
또하나 재미있는 이야기. 과거 90년대 초반에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있었다고 하면서 지폐를 보여줬다.
무려 5천억 디나르. 이걸로 한 때는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며칠 후에는 더 올랐다고 하니 상상이 안되는 인플레이션이다.
<무려 0이 11개다>
거의 3시간 가량 진행된 투어는 칼레메그단 근처 사보르나 성당 근처에서 끝났다.
<투어를 진행해 준 Mira와 함께>
마지막으로 추천해준 곳은 무료인 국립은행의 박물관. 바로 근처에 있기 때문에 들러보기로 했다.
<박물관 내부><현재 유통되는 세르비아 화폐><동전 주조틀과 금속 웨이퍼(Wafer)>
이곳에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수차례 화폐개혁의 산물이 전시되어있었다. 무엇보다 신기한 선물을 한 장 줬다.
<세르비아 화폐에 등장. 1884는 입장 일련번호?>
Belgrade Walking Tour 팀과 Mira 덕분에 베오그라드와 세르비아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베오그라드에서도 어김없이 구보를 시도했다. 해진 후 숙소에서 칼레메그단 요새를 한 바퀴 돌아오는 약 7km의 코스. 칼레메그단의 야경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달리는 즐거운 코스.
<지도로 보니 사바강과 다뉴브강의 교점이 더 확실하네>
베오그라드는 야경 또한 멋있었고 야간에 돌아다니기에 치안도 안정적인 것 같다.
<밤에 보는 보헤미안의 거리 Skadarlija>
베오그라드에서 머무는 중 태권도 선수권 대회가 열리나 보다. 호스텔에 오스트리아 선수단이 들어왔고, 얼마 후 러시아 선수도 두명 들어왔다. 이 친구는 처음에 한국인인줄 알았다. 물어보니 고려인이라고 또박또박 자신을 소개한다. 우리말은 거의 못하지만 고려인이라는 단어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훈련으로 하루종일 나가 있는 친구들이라 함께할 시간은 거의 없었지만 외국에서 태권도 선수들을 보니 매우 반갑고 좋았다.
태권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옆에 있는 모로코 친구도 태권도 수련을 했다고 한다. 3년가량 수련했으나 승단 심사가 어려워서 검은띠는 따지 못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일이다. 이렇게 어려운 운동이지만, 정작 종주국에서는 너무 쉽게 단증을 발급한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누구나 한 번씩은 접해보지만 잘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이상한 운동으로 전락해버렸다.
나도 유단자인데 이 친구들이 보고 그정도의 실력이라고 판단할까? 혼자 조용히 베란다로 나가 굳어버린 몸으로 옆차기를 해 본다.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해. 뜻하지 않게 베오그라드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다.
<칼레메그단 요새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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