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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Serbia)

089. Electric Shock!!! 니콜라 테슬라와의 만남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세르비아 지폐에도 다양한 인물이 그려져 있었다.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 스쳐 지나갔는데 100디나라는 조금 달랐다.

  익숙한 얼굴이 보이고 공식이 씌여 있었다. 바로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와 자속밀도의 단위 테슬라(T)의 정의, $$ \mathrm{T} = \frac{\mathrm{Wb}}{ \mathrm{m}^2} $$


  1제곱미터의 면적에 자속 1웨버(Wb)가 작용하는 것을 자속 밀도 1테슬라(T)로 정의한 것이다. 덧붙여 전기자기학은 대학교때 내 성적표에 폭격을 가한 주범이다.

<지폐에서 만나는 니콜라 테슬라와 그의 교류 모터>

  니콜라 테슬라는 교류(AC, Alternating Current) 모터를 개발하고 교류 송전을 연구하여, 당시 직류(DC, Direct Current) 송전을 주장하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과 경쟁한 사람이다.

  대체 미국의 과학자가 왜 세르비아 지폐에 있을까?

  테슬라의 존재는 지폐 뿐만이 아니었다. 우체국에서도 테슬라를 발견했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시절 발행한 테슬라 탄생 150주년 기념우표. 액면을 유로와 디나르로 병행했다>

  호스텔 직원에게 이유를 물어 보니까 테슬라는 세르비아 사람이라면서 근처에 니콜라 테슬라 박물관(Nikola Tesla Museum)이 있으니까 관심있으면 가 보라고 한다.

  테슬라가 세르비아 사람이라고? 금시초문인데……. 바로 테슬라 박물관으로 향했다.

<니콜라 테슬라 박물관>

  입장료는 학생 할인을 받아 300디나라(약 4,000원) 크게 비싸지 않은 금액이다.

  박물관에 들어가니 바로 테슬라의 흉상이 나를 맞는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테슬라의 흉상>

  테슬라 박물관은 잘 꾸며진 박물관이었다. 눈으로 보는 전시물 뿐만 아니라, 매 시간 직원이 세르비아어와 영어로 테슬라의 생애를 설명하고 시연까지 하고 있었다.

  그 전에는 단순히 교류쪽에 업적을 남기고 테슬라 코일을 만든 미국의 과학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테슬라를 다시 보게 되었다.

<테슬라가 발명한 유도모터와 달걀형 회전자를 가진 모터>

  알고보니 테슬라는 1856년. 오스트리아 제국. 현재 크로아티아 땅에서 태어났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활동을 했다. 당시에는 세르비아는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는 공국일 뿐이었다. 그가 세르비아인으로서 자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세르비아 국적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르비아에서는 자국민으로 여기며 자랑스워 하고 있었고, 베오그라드 국제 공항 역시 니콜라 테슬라 국제 공항으로 부르고 있었다.

  과연 오스트리아와 크로아티아의 입장은 어떨까? 아무튼 한 인물의 국적조차 규명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과거를 가진 발칸 반도다.

<니콜라 테슬라의 삶과 업적을 설명한 전시관>

  니콜라 테슬라는 정말 특이한 사람이었다. 외모도 준수하고 키가 2m에 달하였으며, 언어적 재능이 뛰어나 5~6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시를 즐겨 쓰고 음악적 감각도 있었다고 한다. 그의 절친한 친구는 바로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이니 문학적 소양을 짐작할 수 있다.

  한때는 에디슨과 함께 일하기도 하였으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실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을 말하는 에디슨과, 99%의 영감을 가진 테슬라는 정말 극적으로 비교되는 라이벌이 아닐 수 없다.

<콜로라도 스프링스(Colorado Springs)에서 테슬라 코일방전 중>

  그는 업적은 단지 교류 시스템에 머무르지 않는다. 너무 광범위하여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정도다.

  몇가지 살펴보면 나이아가라 폭포에 발전소를 만드는가 하면, 테슬라 코일, 번개의 주파수 측정과 공진현상 연구, 지진파 연구, 형광등, 무선통신, 원격 영상과 음성 전송(방송과 전화의 원형), 우주에서의 전파 수신, 원격 제어, 전기자동차, X선 발견, 에테르 개념 제시, VTOL(Vertical TakeOff and Landing, 수직 이착륙기), 레이더, 심지어는 무선 송전에까지 관여했다.

  그의 연구는 시대를 너무 앞서가서 당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고, 규모가 너무 방대해서 실제 구현할 수 없는게 더 많았다. 일부는 생전 또는 사후에 구현된 것도 있지만, 아직 실현이나 상용화되지 않은 것도 많다.

<무선통신의 발명자 니콜라 테슬라?>

  무선통신은 흔히 마르코니의 발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테슬라는 이미 세계 최초로 원거리 무선통신을 공식 시연했다. 1943년 미국 대법원은 무선통신에 대한 마르코니의 특허와 상을 취소하고 테슬라에게 넘겼다고 한다.

  심지어는 뢴트겐이 X선의 발견을 발표하자 이전에 찍은 X선 사진을 뢴트겐에게 보내고 X선의 위험성을 경고했다고 한다.

  또한 박물관 한 켠에는 투명한 배 모형이 있었다. 테슬라가 만들었던 원격 조종 보트를 재현한 것이다. 나무상자에 코일이 설치된 형태의 리모콘을 조작하니 실제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방향타가 움직인다.

<테슬라의 무선조종 보트>

  더 대단한 점은 따로 있다. 그의 업적으로 잘 알려진 교류 발전기와 모터, 교류 송전 시스템 등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 특허를 공개한 것이다

  박물관에서는 거대한 테슬라 코일 두가지가 설치되어 있었다. 테슬라 코일은 저 전압을 고 전압으로 변환하는 장치로 하나는 250kV 출력. 또 하나는 500kV(50만 볼트) 출력이 가능하다. 테슬라 코일을 작동시키면 자계가 생성되어 형광등이 켜지고, 스파크 방전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테슬라 코일(250kV) 실험. 자계에 의해 무선으로 네온에 불이 들어온다><테슬라 코일(500kV) 실험. 스파크 방전><선 없이 형광등에 불이 켜진 모습>

  테슬라는 사업가가 아니라 과학자였다. 그리고 이상주의적인 면모를 갖고 있었다. 무선 송전을 통하여 전 인류가 무료로 전기를 사용하는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는 이 꿈을 위해 Wardenclyffe 탑을 세우고, 이 프로젝트의 자금은 은행가 J.P. Morgan에게 투자를 받는다. 테슬라는 40km까지 무선으로 전기에너지를 송출하는데 성공하였으나, 그의 연구는 투자자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것을 알고서 투자는 중단되었고 결국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다.

<나무 모형 Wardenclyffe 전시물>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무선 송전을 연구했다고 한다.

  한때는 큰 돈을 벌고 명예도 얻었지만, 그의 연구 스케일은 너무 컸다. 공진 현상을 연구하면서 빌딩을 흔들어대고, 인공 번개를 만들어내며 초 고전압을 사용하면서 지역 전체를 정전시키는 등 문제가 되자 지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테슬라의 제도 도구>

  그는 700여 건의 특허를 취득하였으나 한 차례의 화재로 엄청난 연구결과와 재산 피해를 입었고, 말년에는 거의 무일푼으로 연구에만 몰두하다가 1943년 뉴욕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죽었다고 한다.

  박물관 한 귀퉁이에는 어두운 가운데 금속 구가 하나 놓여있었다.

  이건 대체 뭘까? 주위의 안내판을 보니 Crematory Urn! 바로 납골함이었다. 박물관으로만 생각했다가 납골함을 보니 어딘가 숙연해진다. 그런데 평생 전기공학을 연구한 테슬라에게는 관 보다는 금속 구가 어딘지 더 어울리는것 같다.

<테슬라의 구형 납골함>

  테슬라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의 질녀가 상속인이 되었다. 테슬라의 유해(Crematory Urn)는 질녀에 의해 1957년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베오그라드로 옮겨졌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강한 전계를 발생시켜서 전기를 원하는대로 끌어쓴다는 아이디어!

  고압선과 송전탑의 주위에서는 백혈병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강한 전자계는 인체에 예측하지 못한 위험을 끼칠 수 있으니, 그의 아이디어는 기술적으로는 가능할지라도 더 이상 구체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테슬라의 변압기와 그의 특허>

  하지만 인도를 여행하면서 밤에 전등을 사용하기 위해 전신주에 선을 몰래 연결하는 모습을 몇 번 봤다. 도전(盜電). 범죄이기도 하지만 위험천만한 행위이기도 하다.

  2013년. 테슬라의 사후 100년이 다가오지만 아직도 비싼 요금 때문에 목숨을 걸고 전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 세계 인류가 라디오 방송을 수신하듯이 자유롭게 전기를 잡아서 무료로 사용하게 한다는 꿈은 어쩌면 영영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금전적 이득보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사용한 니콜라 테슬라의 삶을 보며 물질만을 쫒아 달려가는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테슬라의 교류 송전 시스템 모형>

  현재 우리나라 역시 그의 교류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초당 60번 위상이 바뀌는 교류 220V). 전기를 말하며 흔히 그의 라이벌이었던 에디슨만을 쉽게 떠올리지만, 실제로 우리는 자각하지도 못하는 사이 테슬라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그리고, 테슬라는 인류가 전기에너지를 사용하는 한, 때로는 전기자기학을 공부하는 공학도들을 괴롭히면서 언제까지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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