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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Serbia)

085. 쇼팽과 세르비안 나이트

  루마니아 국경 앞에서 한시간 가량 기다린 후, 세르비아(Serbia, 세르비아식 표기는 Srbije) 국경에 진입했다. 세르비아는 워낙 이미지가 좋지 않아서 조금 긴장했으나 검문소에서는 행선지만 물어보고 쉽게 통과시켜주었다.

  세르비아의 첫인상은 단지 국경하나 넘었을 뿐인데, 루마니아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세르비아를 달리는 달마>

  루마니아보다 녹지면적은 더 넓은 것 같고, 도로 상태는 더 열악하다. 또 종종 호수가 보인다. 글자는 불가리아처럼 키릴을 쓰지만, 로마 알파벳과 병행 표기가 되어있어 읽기 편하다.

<세르비아 호수>

  달마와 점심 먹고 헤어지려고 했는데, 세르비아 국경마을에는 환전소도 식당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조금 달리다 갈림길이 나왔다. 달마는 Kikinda를 거쳐 헝가리로, 나는 Zrenjanin을 지나 Novi Sad로 갈 생각이다. 그래도 마지막 식사는 하고 가야 할텐데…….

<열악해진 도로 사정>

  서로 Kikinda까지, Zrenjanin까지 더 따라오라고 티격태격 하다가 결국 내가 졌다. 이유는 Kikinda가 더 가까우므로.

<갈대숲을 지나>

  Kikinda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환전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환전부터 하고, 달마가 그리워하던 세르비아 햄버거식 플예스카비차(Pljeskavica)로 식사를 했다.

<마침내 Kikinda>

  Kikinda에서는 보그단에게 들은 대로 호박 축제가 한창이었다. 시내를 둘러 보고 충분히 쉬었고 이제 슬슬 헤어져야 할 시간인데 어느덧 날이 저물고 있다.

<호박을 이용한 장식. 아, 호박잎 쌈 먹고싶다>

  원래 계획은 여기서 식사하고 Zrenjanin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잠시 고민하다 오늘은 이 근처에서 묵기로 했다. 뜻하지 않게 달마와의 야영이 하루 연장.

  시내를 벗어나기 전 마트를 들러 물과 저녁거리를 사고, 복잡한 시내를 피해 외곽으로 나갔다. 마침 과수원을 발견할 수 있었고, 과수원 한켠에서 쉬기로 했다.(10월 11일 주행거리 48.19km, 누적거리 7,136km)

<구름 사이로 보이는 카시오페아(Cassiopeia)와 북극성>

  눈을 뜨니 세르비아 농부는 벌써 일하고 있었다. 아마 과수원 주인인가 보다. 그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빨리 자리를 정리하려는데 나를 부른다. 나가보니 큼직한 빵을 가져다 주었고, 물도 채워줬다.

  '마음에 들지 않아 최대한 빨리 벗어나려고 한 세르비아. 의외로 친절한데?'

<과수원 주인이 가져다 준 빵><과수원의 잠자리>

  다시 길을 나선다. 금세 Padej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른가지 제거하는 갈퀴 불도저><옥수수 탈곡기><추수가 끝난 들판>

  갈림길이 나왔고 달마는 북쪽으로 가야 한다. 또 조금 더 따라오라고 티격태격. 이번에는 달마가 양보하기로 했다.

<평온한 호수><호숫가에서>

  강 건너 Ada라는 마을에서 식사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신나는 내리막길. Ada를 향해><이 강만 건너면 Ada>

  한 공원에서 마지막(?) 중식을 마치고 이제 헤어져야 하는데, 그냥 헤어지기는 아쉽다. 캠프파이어 한번 하지 못했다. 캠프파이어를 명분으로 달마를 설득하여 하루만 더 같이 보내기로 했다.

  마침 나는 Ada에 진입하면서 캠핑장 표지판을 봤고, 캠핑장에서는 가능할 것 같았다.

<강폭에 비해 웅장한 현수교와 새파란 하늘><이건 언제찍었지? 다리위에서 촬영 중>

  표지판을 따라 Tisza 강변으로 이동했다. 강변 공원 주위에 숲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캠핑이 가능하며 무료였다. 주위는 낙엽이 떨어져서 매우 운치있는 곳이었고, 군데군데 화덕도 있었다.

  장소를 선정한 후 텐트를 치고, 우선 바로 앞 강가로 갔다. 수영을 하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었고 물도 차가웠다. 샤워만 하고 바로 나뭇가지를 주워 모았다.

  식사를 마치고, 달마와 진짜 마지막 밤.

<식사 준비 완료>

  모닥불을 피워놓고 함께 보내는 즐거운 시간. 주위는 우리밖에 없어 매우 고요한 가운데 이따금씩 삐익 하는 새소리나, 빗소리 같은게 들린다. 예전 숲 해설가로도 일하고, 지리산에서 멸종위기 야생동물 보존사업을 하던 달마는 새소리가 아니라 사슴 우는 소리고, 주위의 나무는 사시나무라고 일러주었다.

  사시나무 줄기는 타원형으로 되어 산들 바람에도 흔들려서 소리가 많이 나고, '사시나무 떨 듯 한다'는 말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모닥불 앞에서 그동안의 여행을 돌이켜 본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București)에서 만나 지금까지의 여정. 생각해 보면 성격도 너무 다른 친구들이었다. 길에서 나는 가능하면 혼자 해보려는 편이고, 달마는 주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다.

<길 물어보는 달마>

  또한, 나는 가능한 빠르게 이동하고 자주 쉬는 편이고, 달마는 땀이 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대신 오랫동안 꾸준히 달리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인가 나는 잘 닦여진 길을 달리는게 좋고, 달마는 샛길을 좋아한다. 덕분에 길에서 떨어져 한참 헤멘적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도 취미나 관심사, 주위 환경, 꿈과 미래계획 등 공통점보다는 다른점이 더 많다.

  당장 불을 지피면서도 나는 한번에 장작을 다 태워 짧고 굵게(?) 끝내려고 했고, 달마는 작은 불로 은은하게 오랫동안 즐기고 싶어했다.

<작은 횃불. 불 지피기>

  서로 다른점이 많은 두 명. 고등학교 때 부터 알고 지냈지만 졸업 후 타향에서 각자의 길을 걸으며 몇년동안 얼굴한 번 보지 못한 채 간간히 한두번의 전화로 근황만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십여년 만에 이국에서 다시 만났다. 공통된 화제는 역시 고등학교 유도부 이야기가 뿐이다. 그런데 무엇이 이렇게 우리를 끈끈하게 잡아주고 있을까? 고등학교때 함께 뒹굴던 불과 삼년의 시간이 십년간의 공백을 뛰어넘게 하는 걸까? 이게 바로 '친구'의 의미인가?

<모닥불을 바라보며>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시간. 달마의 의견대로 장작을 아꼈으나 결국 모닥불은 우리의 기대보다 더 빨리 꺼졌다. 텐트로 돌아가서 쇼팽의 녹턴을 틀었다. 달마는 안어울리게 쇼팽을 좋아한다.

  쇼팽은 독립운동을 하려 했지만 조국의 흙을 한 줌 쥐고 폴란드를 떠났다지? 음, 우리도 내일은 떠나야지. 그래서인가? 녹턴은 매우 우울하게 들린다.

<숲 속의 텐트 두 동>

  아무리 좋은 만남도 결국은 헤어짐이 있다. 여행이 길어지면 헤어짐에도 익숙해져야 하는데 아쉬움은 그렇지 못하다. 팔자좋고 즐거워야 할 여행이 역마'살'이 되어버리는건 이 헤어짐 때문이 아닐까?

  산적같아 보이는 숲 속의 빡빡이 두 명이 안어울리게 녹턴이라니! 그러고 보니 머리도 제법 길었구나. 길어버린 머리만큼 함께한 우리들의 시간. 쇼팽의 녹턴과 함께 마지막 밤은 깊어만 갔다.(주행거리 32.69km, 누적거리 7,169km)

  10월 13일. 헤어짐을 재촉하듯 해는 순식간에 떠오른다. 잠은 깼으나 침낭 속에서 뒹굴며 버텨보지만 결국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야영장에서 출발 전>

  이제는 출발해야 하는데 뭐가 그리 아쉬워서인지 다시 까페로 향했다. 명분은 정보 수집 및 전자기기 충전. 뭐,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까. 다음 목적지를 Novi Sad 대신 베오그라드(Beograd)로 변경함에 따라 지도, 날씨, 숙박정보 등을 확인했다.

  골치아픈 일이 생겨서 베오그라드에서 해결해야 한다. 마침 저렴한 숙소가 있길래 예약까지 완료하고, Ada의 한 공원에서 진짜 마지막 식사를 함께 했다.

<공원 음수대에서 식수 보중 충>

  누가 가고, 누가 보내는게 아니라 서로 돌아서는 길. 달마는 북쪽, 나는 남쪽.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 하고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달마와 헤어지면서 마지막 한 컷>

  "어디서나 건강하게 잘 다니고,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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