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쉬(Niš)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전거 정비였다.
먼저 자전거 정비를 위해 인터넷을 이용, 자전거 가게 몇곳의 위치를 확인하고 호스텔을 나섰는데 모조리 문을 닫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사통팔달. 자전거 가게는 어디?>
호스텔에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11월 11일. 국경일이라서 대부분의 가게가 쉰다는 것.
무슨 국경일이냐고 물어보니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한 날이며 1차 세계대전 종전일이라고 한다.
아하, 1차 세계대전에 세르비아가 깊이 관계되어있었지.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세르비아가 완전한 독립을 얻었으므로 기념하는가 보다.
<니쉬의 주택가>
덧붙여 우리나라에서도 11월 11일은 의미있는 날이다.
바로 대한민국 해군 창설기념일!!! 손원일 제독은 1945년, 선비 사(士)자가 두 번 겹치는(十一) 11월 11일을 기해 바다의 신사-대한민국 해군을 창설했다.
우리의 바다.
나는 잠시 조국을 떠나 있지만, 들리는 바로는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분쟁, 중국과의 EEZ 분쟁, 북한과의 NLL 논란 등 연일 우리 바다가 이슈화 되고 있다고 한다.
<파도치는 대청도 앞바다>
나는 작년 군 전역 직후, NLL에 인접한 대청도라는 섬에 약 두달간 머물렀다.
대청도는 인천에서 배로 거의 5시간이 걸리는 먼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본 것은 엄청난 쓰레기더미! 특히 사리때는 어구, 기름덩어리, 각종 넘치는 쓰레기로 대청도는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이게 다 어디서 온 것일까?
바로 중국 어선에서 우리 바다에 무단 투기한 것이다.
제집 드나들듯이 우리 영해를 침범하며 불법 조업을 일삼고 바다 오염까지 시키는 중국 어선에 대해는 보다 강경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청도에 밀려든 중국 쓰레기>
서해는 아픔은 이 뿐만이 아니다. '99년 1차 연평해전, '02년의 2차 연평해전(서해교전), '09년 대청해전, '10년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까지 우리 바다는 잔잔할 날이 없었다.
우리 바다를 깨끗하게 보존하고, 해상에서 우리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해양력이 필수이다.
<대청도 앞의 우리 어선>
그런데 바다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떤가?
중국 해적들이 우리 영해를 침범하고 더럽히며, 해양경찰에게 흉기를 휘두르는데 제대로 단속도 못하게 손발이 묶여있다.(러시아는 함포사격까지 하며 제압하고, 심지어는 북한도 영해를 침범한 중국 어선을 나포한다.)
또, 중국과의 마찰이 우려된다는 종중 세력과 철 없는 이상주의자들의 선동으로 인해 6년 이상 준비해 온 기지건설이 난항을 겪고 있고, 심지어 우리 해군과 동맹국 해군에게 해적이라고 하는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하는 정신나간 인사도 있으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아는가? 그대가 비난하는 해군이 그대를 지키고 있음을!)
<제주도에서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작업중인 해군ㆍ해병대 장병. 출처 : 국방일보 기사>
2013년 11월 11일. 한 명의 대한민국 예비역 해군으로서 68주년 해군 창설기념일을 맞아, 조국의 바다에서 산화하신 제2 연평해전의 6용사, 천안함 46+1용사, 연평도에서 전사한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 다시한번 그들의 기억하며 고개를 숙인다.
또한 우리의 바다와 해양주권을 사수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악한 생활여건과 무관심, 미흡한 지원과 때로는 비난마저 이겨내고 묵묵히 임무를 다하고 계신 해군ㆍ해병대 장병들과 해양경찰들께 다시한번 감사하며 마음으로나마 응원을 보낸다.
<피로서 지킨 아름다운 우리의 섬. 대청도 사탄동 해변>
다음날 다시 가게에 가 봤다. 아무래도 랙을 고치기는 힘들 것 같고, 다시 구입해야겠다. 세르비아에서는 복장까지 맞춘 자전거 동호인들을 종종 만났으니 부품 구하기는 쉽겠지?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시즌이 끝났다. 물건이 없다. 이런 건 취급하지 않는다.
니쉬의 자전거 가게를 모두 돌아다녔지만, 도무지 랙을 구입할 수 없었고, 고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새하얀 버스가 낯설어보였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용접중인 공사현장을 발견했는데, 철제라면 잠시 용접기를 빌려 내가 작업이라도 하겠지만 이건 알루미늄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아아, 대학생때 알루미늄 용접을 배워 놨어야 하는건데……. 안되면 철근이나 앵글을 구해서 조립해볼까?'
'그나저나 분명히 한쪽에 10kg를 걸 수 있다고 쓰여있는 랙이 이렇게 엿가락처럼 휘어지다니. 심지어는 손으로도 휘어 펼 수 있을 정도이니. 뭐가 이렇게 약한거야?'
투덜대기는 했지만, 금세 생각이 바뀌었다. 앞 페니어 장착 후 아직 스포크가 부러진적은 없었으니까. 만약 이 짐을 뒤에만 실었다면 스포크가 계속 부러졌겠지?
뒷 스포크가 부러지면 나는 전용공구가 없어서 허브까지 분해해야 정비가 가능하다. 스포크 교체하고 허브를 조립하면 볼트 조임에 따라 바퀴 위치가 바뀌고 결국 브레이크와 기어까지 손봐야 한다. 스포크 파손 막은 셈 치자.
<랙을 찾아 강북까지 헤메며. Nišava 강>
그런데 랙 하나 구입하는것. 매우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이게 제일 골치아픈 문제였다. 결국 영어가 가장 잘 통하던 가게에 사정 설명을 하고, 알루미늄 용접(Welding)이 가능한 공업사 연락처를 알아달라고 했다.
다음날, 혹시나 해서 다시 가 봤는데 다행히 Ivan이라는 용접기술자를 소개받게 되었다.
20:00으로 시간 약속을 정하고 주소만 들고 찾아갔다. 거리까지는 찾았는데 번지가 붙어있지 않아 다시 주민들에게 물어보면서 찾아낸 곳은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잘못 왔나?
알고보니 창고에 개인 작업실이 있었다. 통성명을 하자 Ivan은 바로 커피를 내 줬다. 용도를 말해주며 고칠 수 있겠냐 물어보니 가능하다는 것. 랙을 분해하고, 그라인더로 갈아 페인트를 벗겨내어 마침내 용접 준비 완료.
<용접 준비하는 Ivan. 페인트 벗기는 중>
알루미늄 용접은 일반적인 아크용접과 방법이 비슷해 보인다.
<알루미늄 용접 중인 Ivan>
놀라운 것은 볼트 구멍부분이 부러졌는데, 그것까지 다시 만들어줬다.
사실 볼트구멍은 불가능이라 생각했었다. 보통 용접 할 때 용접봉이 달라붙어서 작은 부품은 붙이기 힘들던데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
<사각 볼트구멍은 부러지지 않은 쪽. 둥근 것은 새로 만든 것>
마무리로 다시 검정색 스프레이까지 칠해주고, 거의 1시간 30여분이 지나자 모든 작업이 끝났다.
아직 끝이 아니다. 아. 이제 얼마를 지불해야 하나?
사실 엔지니어들과 흥정하기가 가장 어렵다. 특히 간단해 보이는 작업일수록 그 대가를 무시하기 쉽지만, 간단히 문제를 해결한다는 자체가 훌륭한 기술자라는 뜻이다. 같은 문제도 초보자들은 더 복잡하게 만드는 법이다. 현지의 인건비나 공임의 시세, 작업 난이도와 엔지니어의 숙련도를 대체 어떻게 알고 흥정을 할 것인가.
단지 내 마지노선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크면 안되겠다 정도. 랙이 35,000원 정도였던가?
<왼쪽도 다시 붙였고, MAX 위의 볼트구멍도 새로 만들었다>
조심스레 가격을 물어보자 놀랍게도 그냥 가라고 한다.
"커피 대접도 잘 받았고, 퇴근 후의 휴식시간도 뺏으면서 나를 도와줬으니 대가를 지불하고 싶다"고 했지만 "이건 내 선물이다. 세르비아는 좋은 나라이다,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며 그냥 보낸다.
Ivan 덕분에 완벽하게 정비된 랙을 달고 돌아올 수 있었다.
<고마운 Ivan덕분에 랙 정비 완료>
자전거 정비에만 3개 업체를 돌아다녀야 했다.
Ivan을 소개해준 곳에서는 자전거를 검사하더니 체인과 스프라켓을 교체하라고 한다. 단 부품이 없다면서 다른 곳을 알려줬다.
두번째 가게에서는 허브 정비. 여기는 정비 전문점이다. 사실 허브 교체까지 각오하고 갔는데, 내눈에는 허브를 분해 후 재조립한것 밖에 없다. 뭔가 손보기는 했을텐데 교체한 부품은 베어링 뿐. 어쨌든 페달이 헛도는 현상은 사라졌고, 휠 얼라인먼트까지 잡아줬다.
<허브 정비 중>
정비 공임도 생각보다 저렴했다(1,000 디나라, 약 13,000원) 그동안 한 번 브레이크를 잡으면 안풀리던 문제도 있었기에 뒷 브레이크 역시 새로 구입했다.(1,050 디나라) 이건 쉬워 보이므로 공임도 아낄겸 내가 교체할 예정.
마지막 체인과 스프라켓 교체는 맞는 부품이 없어서 또 다른 가게에 가야 했다.
<스프라켓 세트를 교체한 Planet Bike>
체인은 아직 문제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려울 때마다 기술 지원을 해주던 바이클리에 문의하니 역시 당장 교체를 권하므로 망설임 없이 결심했다.
스프라켓(뒷바퀴 톱니가 겹쳐있는 부품)은 기존에 시마노 CS HG 31-8 11T-32T이라는 모델이 달려있었다. 마침 가게에 11T-34T가 있길래 이걸로 바꿨다.
34T는 톱니의 숫자이다. 기존 32T 모델에 비해 마지막 톱니바퀴만 급격히 커진다. 그만큼 오르막길에서 조금 더 편할 것이다. 기어 변속레버까지 뜯어서 그리스를 다시 칠해주었고 체인, 스프라켓 교체비용은 총 3,100디나라(약 40,000원)
<유독 큼직한 마지막 34T짜리 스프라켓>
기존 Wing은 기어가 24단이었는데, 큰 톱니가 생겼으니 오르막길에서는 27단과 같은 성능을 내 주겠지?
시승을 해 보니 기어 변속이 부드러워졌고 기어를 최대로 올리면 평지에서 타기 불편할정도로 가벼워졌다.
뒷 브레이크는 호스텔에서 직접 교체했다. 딱 맞지 않고 약간 틈새는 있지만 잘 작동된다.
<뒷 브레이크역시 교체 완료>
아, 자전거 정비하는데만 1주일이 넘게 걸렸네.
출혈이 있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정비를 마쳤으니 다행이다. 이제 마음편히 니쉬 관광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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