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베오그라드(Beograd)를 출발했다. 오랜만에 짐을 가득 적재하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길. 다행히 달리기에 쾌적한 날씨였다. 그리고, 지도에서 본 대로 베오그라드 시내를 벗어나자 산길이 나타났다. 뭐, 산길이지만 경사가 크게 심하지는 않았다.
<완만한 산길은 오히려 달리는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출발이 늦어서인가 금세 날이 어두워졌다. 이제 출발시간을 많이 앞당겨야겠다.
<시내를 내려다보는 분은 누구? Mladenovac의 한 공원>
Mladenovac을 지나니 도로 상태도 엉망이 되었다. 작은 라이트가 있기는 하지만 가로등이 없는 거리는 답답하다. 다행히 4km정도 달리자 들이 나온다. 오늘은 여기서 자면 되겠구나.(11월 7일, 주행거리 61.64km, 누적거리 7,450km)
<외로이 서 있는 나무 아래서 숙영>
날이 차가워져서일까? 이제 들에서 자고 일어나면 이너텐트와 플라이 사이에 이슬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얇은 천 두장일 뿐이지만 텐트 내 외의 온도차가 상당한가 보다.
자는데는 문제가 없지만, 아침에는 침낭 겉부분까지 살짝 젖어 있다. 그나마 이렇게 햇살이 내려쬐는 날은 적당히 말리고 갈 수 있다. 텐트를 살짝 열고 자면 좀 나으려나?
<멋진 구름과 들이 펼쳐져 있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다시 출발한다. 오늘은 신나게 달려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 쉬어서였을까?
<들을 지나 드디어 나타난 마을>
그리고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앞 페니어 쪽에서 계속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심해지고 있다. 랙은 케이블 타이와 철사로 나름대로 잘 묶었고, 페니어까지 끈으로 묶어 놓았다.
<아담한 성당이 있던 Smederevsk Palanka>
오늘도 얼마 달리지 못하고, 해가 지고 있다. 왜 이렇게 속도가 안나는 것일까?
날도 짧아져서 목표의 2/3정도밖에 못달리고 있다. 슬슬 숙영을 준비하는데 마침 괜찮은 곳이 보인다. 사거리를 건너자 용도를 모를 큰, 창고같기도 하고 터널같기도 한 곳이 있었다.
괜찮아 보이기는 한데 길에서 너무 잘 보이니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기다렸다 텐트를 치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은 17시 정도다.
<조금만 더 어두워지면 야영 준비해야지>
그런데 한 불청객이 찾아왔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한 녀석이 멈춰서 계속 둘러보는 것. 여기서 자기 힘들겠구나!
어차피 여기가 아니라면 더 어두워지기 전에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그 전에 시도나 해 보자는 생각으로 먼저 인사하며 다가갔다. 그는 두샨이라는 친구였다. 여기서 자도 되겠냐 물어보는데 돌아오는 대답.
"너 세르비아어 아냐? 아니면 독일어 아냐?"
"나? 다 모르는데..."
다시 한 번, 여기서 자겠다고 하니 근처에 스튜디오가 있다고 따라오라고 한다. 무슨 스튜디오? 일단 따라가 보기로 했다. 한 5km정도 가니까 마을 축구장이 나왔다. 여기서 자라는 것. 스튜디오가 스테디움이었구나.
<마을 클럽팀이 연습하는 잔디 스튜디오>
고맙다는 말을 하기가 무섭게 그는 집으로 가버렸다.
혼자 남겨진 축구장을 둘러보는데 담으로 둘러싸여있어 밖에서 보이지도 않고, 처마 밑에는 수도꼭지도 있어서 씻을 수도 있었다. 오호, 여기 괜찮은데?
석식을 끝내고 잘 준비를 막 마쳤는데 그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그의 여동생을 데리고 왔다. 여동생의 영어는 두샨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는 않다.
두샨은 춥지 않은지, 불편한데는 없는지 세심히 물어보더니 원한다면 자기 집에서 자도 된다는 것이다.
설마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다시 온건가? 집이 더 편하기는 할텐데... 잠시 고민했지만, 갑자기 집에 들이닥치면 너무 폐가 될 것 같았다. 솔직히 다시 짐 싸서 움직이기 귀찮기도 했고. 아마 텐트 펴지 않았으면 따라갔을지도 모른다.
고마운 제안이고 거절하기도 미안하다. 정중하게 거절하는 영어 표현을 몇 개 익혀놓아야 하겠다. 어쨌든 여기도 편하고 좋은 곳을 알려줘서 매우 고맙다고 하자 알겠다면서 그의 휴대전화로 기념촬영만 하고 돌아갔다.(주행거리 61.70km, 누적거리 7,512km)
<편안한 잠자리가 되어 준 Batocina의 축구장>
잠자리는 편안했다. 단지 바람을 막아줄 벽이 있고, 처마가 있을 뿐이지만 참 포근했다. 또 텐트에 이슬도 맺히지 않았다.
왠지 두샨을 다시 만날 수 있을 듯 하여 한참 기다렸는데 오지 않는다. 아, 전날 내 카메라에도 기념사진을 남겨놨어야 하는건데.
결국 단념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세르비아 시골마을의 농가>
조금 달리다 산을 넘기 전에 중식을 해결하기로 했다. 테이블이 있는 작은 슈퍼마켓. 이곳의 주인은 친절했고, 영어도 잘 통했다. 한참 식사를 하는데 들어온 손님들이 세르비아어로 말을 걸어온다.
<친절한 슈퍼마켓이 있던 마을>
멍하니 있는데 주인이 나와서 통역을 해 줬다. 뭘 먹거나 마시겠냐는 것.
"보다시피 방금 너한테서 음식을 구입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괜찮다."
그래도 음료라도 사겠다는 것.
그럼 제일 저렴한 초콜렛이나 달라고 했더니 큼직한 초콜렛과 비스켓을 사 줬다. 조심히 다니고 즐거운 세르비아 여행을 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마음써 준 블라단 부부와. 나는 또 눈을 감고있다>
페니어에 음식이 차니 마음까지 든든하게 차는 기분이다. 블라단 부부의 고마운 마음을 담고 다시 길을 달린다. 처음 생각했던 세르비아에 대한 안좋은 생각은 어느새 없어진지 오래다.
<산길을 넘는다>
산지를 넘으니 Jagodina라는 마을이 보인다.
<어느 새 다시 나타난 들판>
신나게 내리막을 달리는데 왼쪽 밭에는 말뚝이 빽빽히 박혀 있다. 대체 뭘 심었길래 말뚝을 박아놓았을까?
오와 열을 맞춰 끝없이 늘어선 막뚝을 보니 마치 열병하는 기분까지 든다.
<말뚝~ 우로 봐><빌라? 아파트? Jagodina에서>
Paracin이라는 마을 근처에서는 유독 부서진 건물이 많이 보인다.
<부서진 건물. 원래는 자동차 정비소?>
벽은 깨끗한데 지붕만 뻥 뚫린게 철거중인 건물은 아니고 이것도 설마 나토 공습에 피격된 건물일까?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
또 세르비아의 건물이 특이한건 좌 우 비대칭인 건물이 많다. 또 도로쪽은 처마조차 없이 칼로 자른 듯한 단면을 보이는 경우가 제법 있다.
눈? 비? 뭔가 이유가 있을텐데 나로서는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좌 우 지붕의 기울기와 길이가 다른 주택><창고도 마찬가지>
얼마나 지났을까? Drenovac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빈 주유소가 있었는데 여기다 싶어서 아직 해는 지지 않았지만 주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도로변이지만 차량 통행량이 적어서 좋은데, 마침 앞에 자가용 한대가 가만히 서 있다. 굳이 텐트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자리만 찍어놓고 차 앞까지 가 보았다.
차는 엔진이 과열되어 서 있었던 것. 해 지기까지 시간도 남았겠다. 이 차가 가야 맘 편히 쉬겠다 싶어서 차라리 정비를 도와주기로 했다.
<엔진 식기를 기다리며>
냉각수 교체도 도와주고 차를 밀어 보기도 했지만, 얼마못가 시동이 다시 꺼진다. 결국 친구를 불러 차를 견인해갔다. 자가용에도 트레일러용 고리가 있어서 랙카 없이도 견인이 가능하다.
어쨌든 아무것도 없는 도로를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다.
그리고 나도 점찍어놓은 자리로 돌아가 바로 숙영 준비에 들었갔다.(주행거리 52.13km, 누적거리 7,564km)
<마침내 편안한 잠자리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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