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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Macedonia)

105. 마트카 계곡의 생환훈련

  스코페 도착 다음날 히로유키와 헤어졌다. 그는 불가리아 소피아로 떠났고, 나는 Bojan이라는 웜샤워(Warm Showers) 호스트와 연락이 되어 그의 집으로 향했다.

  웜샤워(http://www.warmshowers.org)는 카우치서핑(Couch Surfing)과 비슷하지만 자전거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티이다.

  Bojan의 집에 짐을 풀고, 다음날 마트카(Matka) 계곡으로 향했다.

<마트카 계곡 입구>

  마트카 계곡은 스코페 시내에서 약 20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Bojan은 유용할 거라면서 GPS 수신기를 빌려주었다. 관광지 이동시에는 짐을 최소화하지만 혹시 비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페니어에 판초우의를 챙기고 출발했다.

  한시간 가량 달려 마트카 계곡에 도착했다. 좌우에 바위로 둘러싸인 계곡은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멋진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암벽등반, 카약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비수기라서 모두 불가능했다.

<동굴을 지나며, 우측 페니어 하나를 달고 온게 정말 다행이었다><우와, 멋진 계곡이다>

  결국 선택은 보트를 타고 계곡 끝의 동굴 탐사하는 코스와 계곡 건너편에서 등산하는것 뿐이었다. Bojan에 따르면 가이드와 함께 동굴 탐사할 경우 100~200디나르 정도라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2,000디나르 가량을 요구한다. 외국인 요금은 별도인것 같기도 하고, 보트를 타도 혼자이기 때문에 더 비싸다.

<계곡 좌우편에는 절벽><고작? 저기까지 100디나르라고?>

  여름에 왔으면 계곡에서 헤엄도 치고, 다른 여행자들과 팀을 만들어 저렴하게 다닐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을 달래며 선택한 건 등산 코스.

  소형 보트로 계곡을 건너야 하는데 요금은 왕복 100디나르로, 돌아올때 달라고 한다. 그래도 간만에 보트를 타니 기분이 좋아졌다.

<우와, 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면 더 좋을텐데>

  사공은 한시간 가량 산을 오르면 오래된 수도원이 있다고 하며, 돌아와서 소리지르면 다시 데리러 온다고 했다.

<보트 출발하는 선착장>

  안나푸르나에 오른 이후 등산은 처음인것 같다. 절경을 바라보며 기분좋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못가 성벽이 나타나더니 성벽 너머로 수도원이 보인다. 하지만 수도원은 닫혀 있었고 주위를 둘러볼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왜 이런 험한곳에 수도원을 만든 것일까? 혹시 오스만 제국을 피해서?

<잘 보존된 산성><절벽위의 St.Nikola 수도원><계곡은 이미 까마득하다>

  그런데 바로 내려가려니 어딘가 서운하다. 표지판을 보니 1,050고지까지 등산로가 있는 듯 했다. 이왕 여기까지 온거, 더 올라가보기로 했다.

<저 산이 1,050 고지인가 보다><이제는 수도원도 멀어졌다>

  산길을 오르니 기분이 참 좋다. 자전거로는 정말 피하고 싶은게 산이지만 걸을때는 참 좋은 게 산이다.

<저 멀리 보이는 스코페 시가지><벼랑 끝>

  이곳의 산은 특이한게 아름드리 나무는 없고, 가늘고 조그만 나무만 가득하다. 열심히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무슨 산이 이렇게 생겼지?><조그만 나무로 가득한 산>

  정상에는 비석 하나가 서 있었다. 하지만 멀리 스코페 시내가 내려다 보이고 주위 경치 또한 좋았다. 쌀쌀한 날씨였으나 산을 오르는 동안 땀이 나서 반팔을 입고도 춥지 않고, 오히려 시원한 바람이 좋았다.

<현재 고도 1,052m><목장같이 생긴 민둥산>

  산 정상에서 한참을 머무른 듯 하다. 점심이 늦었기에 초코바 하나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이제 내려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아까 온 길 말고, 샛길로 들어섰다. 한번 뛰어서 가 볼까? GPS도 있으니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것이다.

<정상 비석에서><구름을 벗삼아 쉬는 중>

  아, 그런데 이게 실수였다. 등산객이 없어서인지 길이 없다.

  다시 돌아가기는 귀찮으니 잔가지를 헤치며 길을 만들면서 걸어야 했다. 만도칼이나 낫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지름길을 선택한다는게 오히려 더 돌아가는 길이 되어버렸다. 한참을 나뭇가지와 씨름하다보니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서서히 날이 저물고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 내려가야하는데…….

<대체 길이 어디있는거냐?>

  어쩔 수 없이 수도원 근처에서부터는 등산로를 선택했다. 이렇게 좋은 길을 두고 괜히 고생했구나.

<이게 진짜 등산로, 나는 우측 길도없는 곳으로 내려왔다>

  17:00가량 마침내 계곡에 도착했다. 힘든 하루였지만 즐거웠다. 이제 보트만 불러 계곡을 건너면 끝.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반대편 선착장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분명히 부르면 온다고 했는데?

  '야, 이거 야단났다. 계곡에 갖혀버렸구나.' 주위를 둘러보아도 다리도 없고 도무지 계곡을 건널 방법이 없다. 계곡 입구 댐에서 둑을 건널 수 있을 것 같은데, 절벽이라 댐까지 갈 수도 없다.

  다시 소리쳐 보지만 응답은 없고, 해가 지니 추워지기 시작한다. 이제 방법이 없다. 더 추워지기전에 결심을 해야 한다.

<저기를 어떻게 건너가지?>

  배낭안에는 자전거용 페니어, 판초우의, 지갑, 카메라, GPS 등이 들어있다. 아 비닐봉지가 하나 있구나! 다행이다. 겉옷을 모두 벗었다. 춥다.

  전자기기와 윗옷 하나는 방수가 되는 페니어에 넣고, 바지 운동화 등은 판초우의에 싸서 비닐봉지에 넣었다. 으.. 비닐봉지가 작아서 다 묶을 수가 없네. 어쩔 수 없이 겉옷은 다 젖겠네.

  팔굽혀펴기를 여러번 하고 물에 들어갔다. 으아 차가워....

  한 5m정도는 갈 만 했다. 그 이후는 너무너무 추웠다. 그래도 이제 방법이 없다. 가야만 한다. 으. 이 계곡은 짧아 보였는데 도무지 끝날줄을 모르네... 아아, 난 베어그릴스가 아니라고.

  짐 때문에 헤엄치기도 번거롭다. 횡영을 하다가 지쳐서 배영으로 전환 물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니 겨울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듯 하다. 하얗게 반짝이는 별은 온기라고는 전혀 없다. 아니, 온기는 고사하고 시리도록 차갑다.

  이윽고 선착장에 도착했으나 몸이 얼어서 선착장 계단을 오르기도 힘들다. 계단에 매달렸으나 다시 풍덩. 간신히 다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드디어 탈출했다. 빨갛게 변해버린 살>

  상의 한 벌 빼고 신발, 바지 다 젖었다. 티셔츠를 수건으로 쓰고, 물을 짜서 바지를 입고나니 근처 레스토랑 직원이 쉬었다 가라고 한다. 몸을 녹이며 물어보니 사공은 17:00에 퇴근했다고. 으으 진작 17:00까지 내려오라는 말만 했어도 이런 고생은 안했을텐데…….

  이제 자전거를 타고 스코페로 출발. 빨리 쉬고싶은데 바람을 맞으면 춥고. 아주, 오늘은 산악구보에 수영, 자전거까지 삼종경기를 다 하는 날이구나!

  덜덜 떨며 간신히 Bojan의 집에 도착. 온수로 샤워하고 나니 조금 살 것 같다. Bojan은 내가 너무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아서 많이 걱정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니 헛웃음만 나온다. 좋게 생각하자. 아마 1월에 마트카 계곡에서 수영한 한국인은 내가 최초겠지? 나름 신기록 아닌가? 게다가 뱃삯을 안냈으니 100디나르도 아꼈고!

  나중에 휴대폰을 보니 러닝 앱을 켜놓아서 수영한 경로가 기록되어 있었다. 하필이면 내가 건넌곳이 가장 폭이 넓은 곳으로 100m도 넘었다. 게다가 물살을 잘못 계산해서 더 돌아갔다. 이런 어쩐지 끝이 없더라니…….

<그날의 경로. S라인을 그리면서 헤엄쳤다>

  너무너무 추웠던 마트카 계곡의 수영.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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