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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Nepal)

049. 네팔을 뒤로 하며

  끝이 없는 산과 씨름하며 도착한 카트만두(Kathmandu)의 첫인상은 인도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고, 많이 실망스러웠다. 그렇다고 숙소에 죽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타멜(Thamel) 거리를 시작으로 두르바르(Durbar) 광장과 스와얌부나트(Swayambhunath) 사원, 또 카트만두 시내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두르바르 광장 주변휘어진 지붕 구조는 인도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

  카트만두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자전거 정비. 브레이크 케이블도 여러 가닥 끊어졌고, 체인 오일도 다 썼다. 예비 튜브도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맞는 스포크가 있으면 스포크도 통채로 교체하고, 한국보다 저렴하다면 앞 페니어도 구입하고 싶다.

카트만두 거리에는 이름모를 보라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런데 여기저기 다녀봐도 도무지 내 자전거에 맞는 부품은 보이지 않는다. New Road 근처의 자전거포가 즐비한 거리에도 MTB용 밖에 없었다. 인도보다는 부품 수급이 원활한건 사실이지만 지형이 다 산악이라 그런지 로드용은 전혀 없었다.

  한 자전거포의 아저씨가 다른곳을 소개해 주시는데 의외로 숙소 근처였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나는 왜 여기를 못찾았을까?

간만에 전문가의 손길을 받는 Wing

  드디어 몇가지 부품을 구할 수 있었다. 브레이크 케이블을 교체하고, 체인 오일, 예비 튜브, 브레이크 패드를 구입했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전부터 노리던 핸들바 가방과 바엔드. 이제 조금 더 편한 주행자세를 확보하게 되었다.

핸들바 가방과 바엔드 부착. 그리고 태극기!!!

  그리고, 드디어 예정된 날짜가 되어 카트만두를 떠나게 되었다. 시내에서 약 7km가량 떨어진 트리부완(Tribhuwan) 국제공항까지, 네팔에서의 마지막 주행. 역시 네팔이다. 오르막길은 날 쉽게 떠나도록 놓아 주지 않는다.

소박한 트리부완 국제공항네팔에서의 경로. 검정색은 Wing과 함께. 빨간색은 트레킹

  짧게 계획하고 스쳐 지나가리라 생각했던 네팔. 네팔의 여운은 진했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안나푸르나에서 나를 다시 돌아볼 기회도 가졌고, 또 좋은 분들과의 좋은 만남으로 여행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또 산길의 진수를 보여준 곳이기도 하다. 8000m가 넘는 산이 즐비한 산들의 고향. 오죽하면 국기조차 산을 닮았다.

구름조차 힘들어 쉬다 가는 산봉우리

  네팔인들의 외모는 언뜻 인도인과 분별이 힘들 정도이지만, 평균적으로 뚱뚱한 사람이 더 적다. 인종은 산악지역의 많은 소수민족들로 구성되어있고, 티벳 난민들도 상당수 그들의 문화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네팔은 산이 곧 삶이다.

  내가 느끼기에 힌두교도나 무슬림은 인도보다 훨씬 적은 편이다,(개인적인 생각. 무슬림과 힌두교도는 복장에서 종교를 알 수 있다.) 가톨릭 성당은 못봤으나 개신교 교회는 여러 번 봤다. 전반적으로 종교가 삶에 미치는 영향은 인도보다 덜한 듯 하다.

다시 나타난 가네샤와 그에게 참배하는 개?

  네팔은 인도와 같은 문자를 사용하지만, 인도보다 영어가 훨씬 더 잘통했고, 발음역시 조금 더 친근했다. 아마 관광객을 상대하거나, 아니면 외국에 노동력을 제공해온 결과가 아닐까.

  직접 본 네팔은 인도보다 더 가난했다. 하지만 마을의 식재료나 공산품은 더 비싼 편이었다. 네팔에는 산업 기반이 취약하여 대부분의 생필품은 인도에서 수입한다고 한다.

네팔식 편의점

  전기 사정도 안좋아서 마을마다 아예 정전 시간이 공지되어 있는 곳. 호텔은 아예 대형 납축전지를 병렬 연결하여 충전 해 놓고 쓰는곳이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구김살없이 밝고 따뜻했으며 산처럼 넓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장난끼 가득한 네팔 어린이들.좋은 추억을 남긴 네팔에서의 야영

  카트만두에서 보인 다시 지저분해진 거리. 하지만, 아침마다 집 앞 골목길까지 깨끗하게 쓰는 사람들. 이 모순은 뭘까 관찰해 보니, 시스템의 문제였다. 모아 놓은 쓰레기를 버릴 곳이 없으니, 결국은 가장 낮은 강변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다.

스와얌부나트 사원의 호화로운 탑은 네팔의 전성기를 보여준다.

  그렇다. 갖춰진 조건은 더 부족하지만 네팔은 인도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뭐랄까? 더 인간답게 살려 하는 노력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삶의 모습속에 발전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 도깨비의 정체는 뭐지?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들. 땀과 노동의 대가를 아는 사람들. 인도와 같은 종교, 언어, 문화를 공유하고 있지만, 삶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다. 넓은 국토와 농경에 좋은 환경에서 빈둥거리는 인도인들과는 달리 누구하나 노는 사람이 없었다. 80% 이상인 산지에서 먹고살기 위해 계단식 논밭을 일구고, 기회가 되면 인도나 더 먼 외국으로 나가 외화를 벌어오는 모습은 우리 부모님 세대의 고생을 떠올리게 한다.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는 카트만두의 거리

  아마, 인도의 가난이 삶에 대한 무관심과 부족함 없는 자연환경 결과라면 네팔의 가난은 자본과 인프라의 부족과 최근까지 이어진 정치적 불안정의 결과가 아닐까?

  하지만, 그 가난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삶에 당당하게 맞서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쩌면 인도보다 네팔이 더 빨리 발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르바르 광장의 석양

  비자를 연장하면서까지 체류하게 만들었던, 아름다운 안나푸르나와 포카라를 뒤로한 채, 여권에 출국 도장을 찍음으로서 네팔 생활을 마무리했다.

네팔 비자는 여권의 세 페이지를 차지했지만, 내 마음속 네팔은 안나루르나처럼 크게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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