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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에미레이트(UAE)

057. 알 아인. 오아시스를 찾아서

  Green Mubazzarah Park의 캠핑장 덕분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안전하고 아주 편안하게 쉬었다.

캠핑장에서의 텐트 알 아랍. 취사중.

  5월 26일. 조식은 라면. 빨래도 하고, 공원을 둘러본다. 이곳은 Jabel Hafeet라는 산자락에 조성된 공원이다. Jable Hafeet는 해발 1,240m로 특히 사막뿐인 이곳에서는 높은 산이겠지만, 토룽 라를 넘어서 그런지 별로 가보고 싶은 산은 아니었다. 아닌게 아니라, 크고 웅장한 느낌도, 뒷동산같은 포근함도 없는 모래색 바위덩어리일 뿐이다. 이 산이 뭐가 그리 좋은지, 공원도 만들어놓고, 분수도 만들어 놓은게 더 신기할 뿐이다.

Jabel Hafeet 산의 한 부분.

  Green Mubazzarah Park를 떠나 알 아인(Al Ain)으로 향한다. 알 아인은 오아시스를 끼고 있는 도시라는데 오아시스는 어떤 모습일까 벌써 기대된다.

  알 아인으로 가는 길은 Jabel Hafeet 느낌의 모래색 언덕이 많이 보인다. 전날 온 길은 가로등이 없더니, 이제는 갓길도 없어졌다. 길은 좁고, 화려하던 두바이나 아부다비와는 매우 다른 느낌이다.

이 돌이 풍화되면 붉은 모래가 되는 것일까?

  마침내 알 아인 도착. 시내에 들어오니 정말 덥다. 시간도 정오가 막 지난 시간이지만, 내륙이라 그런지 바람조차 통하지 않고 그대로 달궈지고 있는 용광로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어디든지 들어가야겠다.

  우선, 점심도 해결할 겸 한 슈퍼마켓에 들어가 바나나, 빵 등을 구입했다. 여기도 슈퍼마켓 주인은 방글라데시 출신이다. 잠시 이야기를 해 보니, 2년간 여기서 일해 돈을 모았고, 개업하는데 Dh80,000(24,000,000원)정도 들었다고 한다. 전날 본 구멍가게 수준이 아니라 제법 규모가 있는 가게였는데, 약간 외곽인 점을 감안해도 초기 투자비용은 한국보다 더 저렴한 듯 하였다.

2천4백이면 개업가능한 규모의 슈퍼마켓

  근처 그늘이 있는 벤치에서 식사 및 오침 후 본격적인 알 아인 구경에 나섰다. 알 아인의 첫 느낌은 덥다. 그리고, 고층 빌딩이 즐비한 두바이나 아부다비와는 다르게 야트막한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알 아인의 시가지 풍경

  가장 먼저 간 곳은 Al-Jahili Fort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매우 이국적인 성채였는데, 아부다비 부족을 통일한 Sheikh Zayed the First가 지었으며, 그의 손자 Sheikh Zayed Bin Sultan Al Nahyan은 UAE를 통일했고, 증손자 Sheikh Khalifa는 현재 UAE대통령이라고 한다.

Al-Jahili Fort가장 먼저 쌓았다는 내성

  어라? 그럼 그다지 오래 안되었네? 설립년도(1891년)를 보니 대원군이 경복궁 재건할때와 비슷한 듯 하다. 석유도 안 났을 때인데 재원은 어디서 구했을까? 설마 당백전이라도 발행했나?

  그런데 왜 이런 사막 한 가운데 성채를 지었을까? 차라니 조금만 더 가서 Jabel Hafeet를 끼고 산성을 쌓았으면 훨씬 방어에 유리했을텐데? 다른 지형적인 이유가 있나?

Al-Jahili가 그려진 그림. 낙타의 표정이 재미있다.성벽에서

  결국 내가 내린 결론. 농사짓지 않는 유목민에게 넓은 땅은 필요없다. 일이 있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되는데, 굳이 지킬게 있다면 바로 옆에있는 오아시스이겠지? 그걸 위해 쌓은 성채와 망루라는 결론이다. 과연 오아시스가 어떤 곳이길래? 오아시스에 대한 호기심은 더 커져간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곧 닫을 시간이니, 일단 근처의 Sheikh Zayed Palace Museum에 가보기로 했다.

Sheikh Zayed Palace Museum

  이곳은 성채를 쌓은 Sheikh Zayed의 손자인 Sheikh Zayed가 사용하던 궁전이었으나 박물관으로 공개한 곳이다. 내부를 둘러보니 초 호화생활을 했을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의외로 소박한 공간이었다. 유목민의 느낌도 남아있고, 아직 본격적인 유전개발과 발전이 되기 전이라서 그런 것일까?

내부 정원의 모습

  한 방에는 Al Nahyan 가문의 가계도가 있었는데 이름이 길고 다 비슷비슷하여 복잡하기 짝이 없다. Sheikh Zayed Bin Sultan Al Nahyan에서, 일단 Sheikh는 부족장이라는 뜻이고, 뒤에 Al Nahyan은 가문 명칭이다. 아무튼 복잡하다.

회의실아기방 벽에 왠 키가? 어린시절 자주 소금을 얻으러 다닌듯.

  이날은 알 아인 오아시스 근처의 한 공원에서 묵기로 했다.(주행거리 54.82km, 누적거리 3,889km) 화장실이 근처에 있어서 씻기도 좋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벤치를 발견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는데 누가 깨운다. 인도식 복장을 착용한 사람인데, 야광 X-밴드가 없는걸으로 보아 청소하는건 아닌 것 같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여기서 자면 안된다는 것. 알았다고 하는데 경찰에게 가야 한다면서 자꾸 근처의 차로 잡아 끈다. 다른 벤치에도 쉬고 있는 시민들이 많은데 왜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며 따라 가 보니, 일반 승용차에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다. 역시 사복차림이며 에미레이트 신분증이나 여권제시를 요구한다. 뭔가 이상해서 경찰 맞냐고 물어보니 경찰신분증을 보여주고, 차량 비상등도 보여준다.

숙소로 쓸 뻔 했으나 쫒겨난 벤치

  경찰이 맞긴 한가 보다. 골치아프게 되었다. 왜 여기서 자냐고 묻길래, 잘만한 숙소를 못찾아서 그런다고 대답하는데, 바로 앞에 호텔이 있다는 것. 일단 여권을 보여주자, 비자는 왜 없냐고 묻더니 어딘가 전화를 걸며 여권번호를 확인하더니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여권을 돌려주더니 그냥 가라는 것.

  일단 자리를 옮겨야 하기에 짐을 꾸리는데, 이상한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대체 왜 경찰이 외국인 노동자 복장을 하고 있을까? 만약 공원에서 자는게 문제라면 계도나 훈방, 벌금 등 조치는 안하고 왜 여권 번호만 확인했지? 게다가 여기서 쉬는(나처럼 대놓고 자지는 않았지만) 사람도 많은데 왜 나만?

알 아인 시내 풍경. 모스크는 항상 대각선으로 향해 있다.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불법체류자 단속이 아닌가 싶다. 근무복을 입고 다니면 피할테니 일부러 외국인 복장으로 위장한거고. 다른 조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일단 출입국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그냥 돌려보낸듯 하다. 그러고 보니, 두바이나 아부다비와 달리 여기는 국경 근처다. 나중에 UAE에 재입국 해 보면 여권번호로 뭔 짓을 한건지 알 수 있겠지. 뭔가 문제가 있으면 입국거부될거고, 아니면 별 일 없을 거고.

  별 문제는 아닌것 같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자다 깬 것도 그렇고, 다른 잠자리를 찾는것도 귀찮고, 공원에서 쉬던 사람 중 나만 불법체류자 취급을 받은것도. 그나저나 외모에 신경 못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없어보이나?

  불쾌한 기분을 뒤로하고, 다른 숙소를 찾아 이동. 마침내 정말 눈에 잘 안띄는 벤치를 찾아서 눈을 붙이기 무섭게 해가 떠오른다. 전날 잔 시간은 3시간 정도. 그놈의 경찰 때문이다. 투덜거리면서 잠자리를 정리한다.

횡단보도 표지판. 처음에는 여자인줄 알았으나, 현지 복장이었다.

  오늘은 일단 오아시스를 먼저 가기로 했다. 오아시스 그늘에서 낮잠도 자고, 물도 채워야겠다.

  알 아인 오아시스는 입구까지 설치되어 있고, 내부에 들어가니, 수많은 담장으로 미로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담 내부에는 대추야자 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나무에 직접 접촉할 수는 없게 되어있다.

알 아인 오아시스 입구

  이렇게 많은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니 근처에 매우 큰 수원이 있나 보다. 그런데, 오아시스에서 한 참을 헤메고 다니는데 도무지 샘은 보이지 않는다. 나무만 울창하고, 인공적으로 만든 수로를 따라 물이 흐르고 있다.

콘크리트 수로를 보려고 여기 온게 아니라고!!!

  알 아인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로 오아시스는 UNESCO의 World Heritage라는데, 옆에 성까지 쌓아 올렸는데……. 대체 샘물은 보이지 않는다. 수로를 거슬러 올라가봐도, 물이 고일만한 곳으로 내려가봐도 나무밖에 없다. 거의 두시간 가까이 헤멘듯 하다. 가뜩이나 더운데, 구석구석 헤메고 다니니 옷이 다 땀에 젖어서 더욱 불쾌하다.

설마 이 작은 웅덩이때문에 성을 쌓지는 않았겠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다시 가이드북을 펼쳐서 확인해 보았다.

  A wander through this atmospheric date-palm oasis is a highlight of a visit to Al-Ain. 이 대추야자가 가득한 오아시스를 헤메는 것은 알 아인 관광의 하이라이트다. There are nearly 150,000 date palms here, ~ 약 150,000의 대추야자 ~ 등 이 있다. It's a great place to spend an hour or so, particularly in hot weather when it stays deliciously cool. 한시간 정도 머물기 좋은 곳이다. 특히 더울 때 여기 머물면 시원하고 유쾌할 것이다.

대추야자가 가득 달려있다.

  그런데, 왜 식수, 낙타 이런 이야기는 없지? 내가 생각하던 오아시스는 모래 가운데 물 웅덩이가 있고, 목마른 사람들이 물을 마시고, 야자나무에 기대어 쉬고, 옆에는 낙타가 어슬렁거리는 곳인데

  혹시 오아시스가 이 뜻이 아닌가? 사전을 확인해 보니. 음.

  (n.) 1. 오아시스(사막 가운데의 녹지), 2. 휴식처, 위안의 장소

  사막 가운데의 물 웅덩이가 아니라 녹지? 설마 그럼 내가 오아시스라는 단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던걸까?

  다시 알 아인 오아시스를 살펴봤다. 물줄기를 따라 열심히 헤매고 다닐때는 관심없던 나무들. 물을 포기하고 나무를 보니, 키 큰 나무들이 직사광선은 가려주고, 어디선가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아늑하고 편안한 곳이었다.

오아시스는 어디 있는 것일까?

  옆에 서양인 가족들은 서로 담소를 나누면서 그늘을 즐기고 있었다. '왜 나는 이런 멋진곳을 몰랐을까?' 진짜 오아시스에서 내 상상속의 오아시스를 찾아 두시간이나 헤메이다니. 멍청해도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을까?

  갑자기 뭔가 다 잘못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짜 중요한 것들은 다 한국에 있었다. 머리 커지고 부터는 좋은 시간한번 보내지 못한 부모님도, 언제나 나와 함께해준 친구들도. 그러고 보니 내 꿈은 어디로 갔나? 지금 나는 뭘 찾아서 해메고 있는 걸까? 치르치르가 찾아 헤매던 파랑새는 집에 있었다는데. 갑자기 속편히 군 생활 할때가 즐거웠다는 생각도 들고, 동기들과의 시간도 떠오른다. 고마운 분들의 얼굴도 하나하나 떠오르고.

휴식처는 사실 내 옆에 있었다.

  아무리 세계를 헤매고 다녀도 진짜 내가 가야 할 곳, 만나야 할 분, 내 꿈과 미래도 다 근처에 있었던게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거지?

  오아시스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이다 온갖 생각에 머리속이 복잡해진 날이다. 에이 길이나 떠나야지.


  여적. 나중에 인터넷으로 오아시스 검색을 해 봤다.
  (두산백과 발췌) 사막과 같은 건조지역의 특정한 위치에서 물 공급이 지속적으로 일어나 외부와 단절된 하나의 식생을 이루는 곳.

  역시 샘물을 말하는게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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