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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India)

017. 신을 경배하는 인간의 위대함. 엘로라

  1월 13일 일. 엘로라(Ellora)로 향했다. 사실 아우랑가바드에 온 이유는 엘로라와 아잔타 석굴을 보기 위한 것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엘로라는 아우랑가바드에서 약 30km 떨어져 있다. 짐을 다 풀어놓고 달리는 발걸음은 매우 가볍다.엘로라 근처 언덕에서

  엘로라 석굴군(Ellora Caves)은 7세기부터 500년간 만들어온 굴이라고 한다. 입구 앞은 가이드북이나 각종 기념품을 파는 잡상인들로 가득했다. 입장료는 외국인 250루피(학생할인 불가). 인도인에게는 10루피만 받는다.

  엘로라는 멀리서 보면 큰 언덕이 있는 공원일 뿐이었다. 힌두교 석굴부터 보기 위하여 더 들어갔다.엘로라 석굴군

  영어 Caves를 보고 작은 동굴사원인줄 알았는데 직접 본 엘로라 석굴은 바위덩어리를 파내어 만든 인조 석굴이었다. 아, 엘로라 석굴 건축 계획한 사람들은 제 정신이 아니었을거다. 어떻게 이런 산을 파들어가 석굴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Pune에서 본 Pataleshvara Cave에서도 바위를 음각으로 파 들어간 것을 보고 놀랐으나 엘로라 석굴은 비교를 불허하는 규모였다.

  건축적으로 정확히는 모르지만, 힌두교 석굴은 대체로 ㅂ자 구조로 되어 있다. 석굴 앞에 조그만 뜰이 있고, 안에 다시 방이 있는 구조. 힌두교 석굴에는 초현실적이고 역동적인 조각들이 가득했다.21번 석굴의 모습 저 바위덩어리를 깎아낸 조각을 보라힌두교 석굴의 조각들. 가네샤와 강가 여신, 시바, 브라흐마, 비슈누 삼면상파내다 보니 구멍이 생긴 벽은 공사의 난이도를 말해주고. 놀랍게 창도 창살도 한덩어리의 바위다

  힌두교 석굴 다음으로 불교 석굴을 관람했다. 시기적으로는 불교→힌두교자이나교 순서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불교 사원은 힌두교에 비해 대체로 웅장하고, 잘 정돈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건 말도 안되는 건물들이다. 다이너마이트도 없던 시절, 석수의 망치와 정만으로 대체 어떻게 저 넓은 홀을 파내었을까? 평지에 건물을 세우기도 어려운데, 바위를 파내서 건물을 만든다는 아이디어. 단순히 종교적 열정만으로 저걸 지은걸까? 군사요새로나 쓰일만한 위치에 대체 왜 석굴을 만들어야만 했을까?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안고 대체 종교는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며 관람을 계속했다.웅장한 5번 동굴의 홀

  아! 이건 석굴암이네. 아마 석굴암이 영향을 받았을거다. 시기적으로도 엘로라 불교석굴(7~8세기)이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넘어왔다면 통일신라 후반기가 되겠지. 나는 지금 문명교류의 현장에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건, 엘로라에서 본 불상은 가부좌보다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많다.석굴암 본존불상을 연상시키는 10번 굴

  불교 석굴 중 3, 4번 석굴은 아직 미완성이다. 그리고, 이 굴을 완성시키기 전, 불교가 쇠퇴하며 근처의 힌두교 사원을 계속 짓게 된다.조각하다 만 기둥과 천오백년의 과업을 마무리하려는 손길

  다음은 조금 떨어진 자이나교 석굴로 간다. 불교석굴의 엄숙함과 정돈됨 - 힌두석굴의 자유로움은 시기적으로 가장 마지막인 자이나교 석굴에서는 보다 더 세심해진 묘사와 작아진 규모로 나타난다. 아마 이제는 더 큰 굴을 만들 힘도 없을 것이다.자이나교 석굴은 (상대적으로)작지만 세밀하게 만들어져 있다.조그만 자이나교 굴의 회랑

  그리고, 마지막으로 엘로라 석굴군의 하이라이트. 까일라사 사원(Kailasa Temple)에 들어갔다.까일라사 사원의 정면. 한쪽에는 나를 찍고있는 사람도 있다.

  크리슈나 1세가 7,000명의 작업원을 동원하여 150년동안 만든 사원으로 한 덩어리의 바위를 이용한 건축물 중 세계 최대 규모이다. 겉보기에는 규모 외에는 다른 굴과 큰 차이 없는듯 했으나 내부는 달랐다. 이, 이건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건물이 아니다. 크리슈나 1세는 대체 뭐하던 인간인가? 작업에 대한 경외심보다 반감이 먼저 생긴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건물을 지어야만 했을까?까일라사 사원의 내부. 바위가 주는 육중한 느낌

  저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깎아 형태를 만들고, 하나하나 세밀한 조각을 새겼다. 아마 김일성은 엘로라에 대해 들어봤거나 사진을 본 것이 분명하다. 전차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거대한 땅굴 파기를 좋아하고, 명산마다 이상한 문구와 자기 동상을 세우는게 꼭 같은 아이디어다. 다만 김일성은 자신을 신격화하기 위한 작업이었지만, 이곳은 신전이다. 농작물이 풍부하므로 일꾼들도 아마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작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엘로라는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을 매우 신기하게 생각하는 듯 하다. 구경하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사진기를, 휴대전화를 들이댄다. 까일라사 사원 앞에서 사진 찍어주는데만 1시간을 소모했다. 이제, 연예인들이 왜 팬들의 사진요구를 거절하는지 알 것 같다. 사진요구에 질려서 빠져나갈 곳을 찾던 중, 까일라사 사원 뒤편의 언덕에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 것이 보인다. '저기로 달아나야겠다. 근데 어떻게 올라가지?'

  계속 사진 찍혀주면서 주위를 살피니 등반할 만한 절벽이 보인다. '아하, 저기로 올라갔구나.' 그런데, 바위를 타고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운동화도 미끄럽고, 안전장치도 없다. '대체 꼬마들은 어떻게 올라간거지? 로프 하나만 있어도 쉬울텐데.'

  중간쯤 올라가 보니 의문은 금세 풀렸다. 반대편에 계단이 있었던 것. 아. 밑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는 '사진 같이 찍어주세요'가 아니라. '저 미친 X좀봐. 바위를 타고 있어' 였구나. 자전거 헬멧을 가방에 달고 암벽을 타는 외국인은 정말 흥미로운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난 유격대 출신이다!!위에서 본 까일라사 사원은 과연 장관이었다.

 까일라사 사원 뒷동산에서 어린 왕자도 좋아하던 석양을 바라보며, 인간의 노력에 대한 위대함과, 과연 종교는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인가 갖은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황홀하도록 아름다웠던 엘로라의 석양을 뒤로하고 다시 아우랑가바드 숙소를 향해 떠난다.

여적, 위대한 엘로라 석굴군과, 거창한 생각이후, 내려오는 길에 개x을 밟았다. 그래, 안어울리는 개똥철학은 집어치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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