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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India)

018. 스포크는 부러지고, 배는 아프고

  아우랑가바드에서 너무 오래 지체했다. 도착한게 11일이니까 6일을 머물렀던 셈. 사람과 음식, 환경이 좋아서였다. 간만에 한식을 먹기도 하고, 한국인들도 많이 만났다. 특히 엘로라에서 만난 한홍희 씨와는 인연이 계속 이어져 이틀간 더블룸을 함께 쓰며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호텔 Panchavati와 장미식당

  그리고, 16일 드디어 아우랑가바드를 떠났다. 다음 목적지는 아잔타(Ajanta). 엘로라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석굴군이 있는 곳이다.

  매연과 소음, 무질서의 아우랑가바드 시내를 벗어나 작은 언덕을 올라가는 중 갑자기 뒤에서 '뚝'하는 소리가 들린다. 즉시 자전거를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조그만 힌두사원이 있다. 사원 근처로 가서 자전거를 살펴보니 세상에, 바퀴살(Spoke) 하나가 부러져 있는 것이다. 바퀴살을 잡아주는 끝부분이 잘린 듯 떨어져나갔다. 이를 어쩐다. 고리에 걸어넣고 바퀴를 돌려보니 금세 빠진다. 으아, 어쩐지 아우랑가바드에서 스포크를 사고 싶더라니……(맞는게 없었다). 아마 자전거 여행에 충분한 경험이 있었으면 예비 스포크를 당연히 챙겨왔을 테지만 난, 스포크가 망가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짐때문에 자전거에 무리가 많이 가나보다. 생각 끝에 끝을 ?형으로 갈고리처럼 구부려서 걸기로 했다. 임시 방편은 되겠지.부러진 스포크와, 꽃목걸이를 건 새끼염소가 울어대던 힌두사원

  그런데 왠걸. 스포크 끝은 쉽게 휘어지지도 않는다. '펜치도 필요한 연장이었구나'. 으 시행착오 투성이다. 칼 끝 홈에 걸고 구부리니 너무 짧아졌다. 이번에는 바퀴테에 닿지를 않는다. 큰 돌을 몇개 주워 망치와 모루로 쓰기로 했다. 갑자기 구석기시대로 환원이다.

  땀을 뻘뻘흘리며 낑낑대는것을 본 어떤 분이 사원에서 음식을 조금 갖다준다. 고마웠다. 그걸 본 옆에 사탕수수즙 장수도 몇잔을 준다. 고맙게 마시면서(나중에 다 청구했다.) 다시 돌을 두들기는데, 돌이 모루역할을 못하고 바퀴살 모양대로 파여버린다. 으으. 여기 석질이 무르기 때문에 굴을 많이 팠나 보다.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하며 간신히 빠지지 않는 갈고리를 만들어 끼웠다. 바퀴살을 정렬하고(25루피에 구입한 스포크 렌치는 제 몫을 톡톡히 한다) 다시 출발하려니 세시간이 지나 있었다. '아. 오늘중 아잔타 도착은 힘들겠구나.'

  뒷바퀴가 불안하니 도무지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스포크를 교체할 때 까지만이라도 견뎌야 할텐데. 중간 중간 마을을 지날때마다 자전거가게에 들렀지만 맞는 스포크가 없다. 큰일이다. 다시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여행 자체가 불투명하다. 다행히도 부러진 스포크는 잘 버텨주고 있다.

  아우랑가바드와 아잔타의 중간 Sillod라는 마을을 막 지난 지점에서 야영을 준비했다. 마침 벽이 있어 인도인의 관측으로부터 엄폐가 보장되는 공터가 있었다.(이날 주행거리 62.68km, 누적거리 906km)

  자는데 한 두시간쯤 지났나?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너무 추워서 내복과 내피, 긴 추리닝까지 꺼내입었는데도 춥다. 배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식은땀도 난다. 아차 몸살이구나. 아우랑가바드에서 잘 쉬었는데 왠일이지?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해가 중천에 떠 있다. 아무리 아파도 여기서 계속 있을수는 없다. 대충 짐을 꾸리고 길을 나선다. 아무 호텔이나 들어가리라.

  속도도 나지 않고 가만히 있는것조차 힘들다. 몸살기운은 없어졌으나 아랫배가 너무 아프다. 장염인가? 아무래도, 전날 막 마신 물 때문인것 같다. 

  이제 거의 아잔타에 도착했다. 길가의 호텔마다 방이 없다.(Tip. 인도는 '장'급도 안되는 숙소도 Hotel이고, 식당도 Hotel이다. Lodge 표시가 없는 허름한 호텔은 식당일 가능성이 크다.)

  호텔(식당)앞에서 배가 너무 아파서 좀 쉬려는데 호텔(식당)주인이 '꼬레아?' 하더니 휴대폰을 내민다. 엉겁결에 전화를 받아보니 우리말이 들린다. '이제는 정신도 나갔나?' 싶은 찰나 조금만 기다리라는것. 얼마후에 우리말을 유창하게 말하는 인도인이 나타났다. 자신을 슈슈라고 소개한 그는 15km 정도만 가면 쉴 곳이 있다고, MTDC Kanyakung Fardapur를 알려주고, 가는 길은 내리막이라고까지 알려줬다. 기다시피하여 MTDC Kanyakung Fardapur에 도착. 바로 침대에 쓰러져버렸다.(주행거리 39.41, 누적거리 945km)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악몽같은 하루를 보냈다.정원 둘레에 방이 있는 MTDC Kanyakung Fardapur. 무슨 극기훈련이었나? 한국에서도 이런 방을 본 것 같다.

  다음 날, 슈슈가 다시 찾아왔다. 오토바이에 타라고 하고, 마을 의사에게로 데려갔다. 처방전을 받고(50루피), 약국에서 약을 샀다. 비상용으로 타이레놀(Acetaminophen)도 함께 샀다.(120루피) 약 먹고 반나절 쉬니 한결 좋아졌다. 15루피짜리 생수값 아끼다가 약값에 호텔 2박에 일정 늦어지고, 이게 무슨 꼴이냐.

  오후에는 몸이 더 좋아져서 이제 아잔타 석굴을 보려는데 슈슈가 다시 찾아왔다. 석굴까지 오토바이를 태워주고, 차도 몇잔 사줬다.

  마침내 고생끝에 도착한 아잔타 석굴! 엘로라와는 또다른 느낌이었다.아잔타의 전경

  연대적으로는 아잔타가 더 앞서며, 엘로라는 산을 깎아 만들었다면, 아잔타는 U자 모양의 벼랑을 깎아서 만들었다. 또 엘로라는 불교-힌두교-자이나교의 석굴이지만 아잔타는 불교 석굴군이다. 또한 아잔타는 프레스코화로도 유명하다.

  1번 굴에 들어가니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그림이 나를 반긴다.정확한 명칭은 보디삿뜨와 빠드마빠니(Bodhisattva Padmapani)아잔타 석굴아잔타는 프레스코 벽화로 유명하지만, 벽화만 있는것은 아니다. 섬세한 조각들

  사실 아잔타의 감동은 엘로라에 미치지 못했다. 까일라사 사원을 먼저 보았기 때문일까? 석굴도 더 이상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았고, 프레스코화는 많이 벗겨지고 어두운 조명으로 내용 확인도 쉽지 않았다. 아잔타를 먼저 보고, 엘로라를 봤다면 아마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Tip. 인도에 간다면, 반드시 아잔타를 먼저 보라. 건축연대도 그게 맞다)어딘가 능청스러운 듯한 모습의 불상코끼리가 장식된 문. 10번 굴이던가?

아잔타 석굴 관람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가마도 운행한다. 100루피였나? 200루피였나?쉬고있는 가마꾼.

  재미있는 석굴도 있다. 마치 서까래처럼, 천장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돌을 파들어 간 것이니 아마 순전히 장식의 용도였을것이다. 내 눈에는 배의 용골(Keel)과 늑골(Frame)로 보였다. 뒤집으면 보트가 되겠지?배를 연상시키는 석굴. 여기도 부처님은 의자에 앉아있다.

  24번 석굴도 흥미로웠다. 미완성인데, 홀이 있는게 아니고, 밭고랑처럼 홈이 파져있는 것. 이런식으로 계속 파내다 보면 숨겨져 있던 석굴이 나오나보다. 아마 미켈란젤로였을거다. 조각을 어떻게 하냐는 물음에, 나는 돌 안에 원래 있던 형상을 드러낼 뿐이라고 했다던데. 갑자기 그 말이 떠오른다.노동의 강도가 느껴지는 미완성 석굴편안해 보이는 와불

  석굴 구경을 마치고 다시 슈슈의 가게로 갔다. 슈슈는 한국에 1개월 있었다고 하는데 놀라울 정도로 말을 잘한다.(글자는 못읽는다.) 슈슈는 짜이를 사주며, 많은 기념품을 보여줬다. 내가 아플때 베풀어준 친절을 생각하면 여러 개 사고 싶었지만 자전거에 짐을 추가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차익으로 식사를 대접하거나 아니면 돈을 직접 주겠다고 했는데 그는 계속 거절한다. 그에 대한 고마움으로 아주 작은 코끼리상과 향로를 샀다(총 400루피). 모기향 받침으로 써야겠다.

  한참 후, 노점에서 비슷한 향로가격을 물어보니 60루피정도란다. 아마 코끼리도 비슷하겠지? 슈슈는 나에게 사기를 친것가? 그래도 내가 그냥 주려던 돈을 받거나, 또는 근사한 식사 한끼 대접받는게 더 많이 남았을 것이다. 차라리 돈을 받지 왜? 불로소득은 싫었던 것일까? 사기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 재질이 다르겠지. 그런데 뭔지 모를 이 찝찝함은 뭘까?

아잔타는 바퀴살 고장과, 끔찍했던 복통. 그리고 슈슈의 따뜻하고 고마웠던 복잡한 친절로 대표될 것이다.가게에서 슈슈. 그는 단순한 장사꾼일 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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