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도 라마단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아랍 에미레이트와 다른 점은 라마단이 마치 축제 같다는 점이다. 라마단을 맞아 아야 소피아 앞은 식사 시간을 기다리는 가족들로 가득했고, 그들의 식사는 늦게까지 이어졌다.
<드디어 단식 끝>
또한, 노점상들도 즐비하고, 각종 공연도 활성화 되어 있었다. 종교 의식에서 시작된 수피(Sufi) 댄스 공연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이 춤은 별거 없다. 그냥 빙글빙글 돈다. 어지럽지도 않은가 보다.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수피댄스>
참, 터키에서는 라마단은 유효하지만, 낮에 무엇을 먹어도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터키에서 가장 낯선 건 낮이 무지 길어졌다는 것이다. 20:30분이 넘어서도 아직도 환하다. 얼마전에 있던 두바이에서는 20:00만 되어도 어두웠기에 이런 현상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21:03분에 찍은 블루모스크. 아직도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았다>
샤르자에서 발생한 근육 경련의 위력은 대단했다. 며칠이 지나도록 통증이 느껴지는 것. 그 기간동안은 슬슬 몸이나 풀기로 했다. 이스탄불에서의 조깅. 아야 소피아와 히포드롬. 블루 모스크, 그랜드 바자르, 갈라타 다리와 금각만을 바라보며 전차와 함께 달리는 기가 막힌 코스다. 누군가 이스탄불에 온다면, 반드시 운동화를 지참하기를 권하고 싶다.
<기가막힌 이스탄불의 조깅코스>
호스텔에서 만난 일행들과 함께 블루모스크, 톱카프(Topkapı) 궁전 등 이스탄불의 이곳 저곳을 쏘다녔다. 블루 모스크 내부에서는 이슬람에 대해 교육도 하고 있었는데, 관심이 있다면 들어볼 만 하다. 더 많은 정보를 원하는 사람을 위해 책자도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화려하기 그지 없는 블루모스크의 내부>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 제국이 이스탄불을 점령한 후 처음 세운 궁전으로, 건물이 중심에 자리잡는 일반적인 건물과 달리, 중앙은 공터로 비어있었다.
<톱카프 궁전 내부>
아랍 에미레이트에서 집 안에 천막을 치는 경우를 봤다. 아마 투르크 왕조에서도 유목하던 시절처럼 가끔 천막을 치기도 했을 것이다.
<이슬람 성물이 전시된 톱카프 궁전의 동쪽 건물>
하지만, 톱카프 궁전에서 무엇보다 장관인 것은, 바로 정원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다. 보소포러스 해협을 중심으로 좌측에 유럽, 우측에 아시아가 동시에 내려다보인다.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이런 곳에 궁전을 세운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아마, 이곳에서 전투를 회상할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톱카프 궁전에서 내려다보는 보소포러스 해협>
도도하기 짝이 없던 아랍 에미레이트와는 달리 터키 사람들은 낯을 덜 가리는 편이다. 게다가 호객꾼들은 더하다. 어디서 우리 말을 익혀서 말을 걸거나 장난까지 거는 녀석들도 있지만, 터키에서는 기분이 좋아서 늘 좋게 웃어 넘기곤 했다.
터키 음식도 입에 잘 맞았지만 한국음식도 먹게 되었다. 처음 한국식당 천기와 사장님께 인사드린 후 '내일 오겠습니다' 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다시 가긴 했으나, 가격이 부담스러웠는데 터키 음식 수준으로 할인해주셨다. 여러모로 이스탄불의 생활이 즐거웠다.
<길거리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도뇨르(Dönör) 케밥>
두바이에서는 줄곧 혼자 있던 시간이 많았는데, 이스탄불에서는 여행자들이 많아서 항상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고, 게다가 여름방학까지 겹쳐서 여행자들은 끊일 줄 모르고 계속 들어왔다. 터키는 금주 국가도 아니다. 나도 덩달아 신이나서 낮에는 돌아다니고, 밤에는 맥주와 함께했다.
히포드롬 광장에는 오벨리스크가 서 있었다. 39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히포드롬 광장의 오벨리스크>
그런데 흥미로운건, 수천년된 오벨리스크는 멀쩡한데, 그 아래 A.D. 4세기 로마시대 만든 기단은 갈라져 있었다. 또, 오벨리스크는 지면에서 5미터 이상 묻혀 있었다. 아마, 로마시대의 지면은 이렇게 낮았으리라. 그 당시에 히포드롬은 전차 경기장이었다고 한다.
<땅 속에서 금이가고 닳았지만 무게를 잘 버티고 있다>
루멜리 히사르(Rumeli hisarı)도 굉장했다. 보소포러스 해협 반대편에는 이전에 세운 아나돌루 히사르가 있다. 아나돌루는 아마 아나톨리아(소아시아)라는 뜻이리라.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플 공략을 위해 추가로 루멜리 히사르를 쌓았다.
<루멜리 히사르에서 바라본 보소포러스 해협>
이 성에서 보소포러스 해협이 다 내려다보인다. 지금은 단지 기가막힌 경치를 선사할 뿐이지만, 당시 양쪽의 두 성에서 포를 쏘면서 비잔틴 제국의 해상 보급로를 차단하고 보소포러스 해협의 제해권을 장악했을 것이다. 비잔틴 제국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성이 완성되고 채 1년도 안되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다.
<루멜리 히사르 앞에서>
주변 관광도 다녔지만, Wing에도 신경을 써 줘야 한다. 여행시작 전, 짐 무게 초과로 앞 페니어(자전거 장착용 가방)는 인도에서 구입할 계획이었다. 물론 찾을 수 없었고, 그동안 하중이 뒤에만 실리면서 연속되는 스포크 파손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있던 상태였다.
터키에서 드디어 앞 페니어를 발겼했다. 가격은 한국과 비슷한 88유로. 거치대는 33달러. 장착 공임은 10리라다. 대체 왜 달러와 유로, 리라를 혼용하는지 모를 일이다.
페니어를 사면서 내가 직접 교체한 스포크의 정비까지 의뢰했다.
<수술대에 오른 Wing>
부탄가스는 나사형 밖에 찾을 수 없었으나, 다행히 네팔에서 산 나사형 버너 덕분에 사용 가능하다. 다시 길을 떠나기 위한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7월 21일에는 돌마바흐체(Dolmabahçe) 궁전 관람 후, 베벡으로 놀러가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도 될 만한 거리였으나 일행들이 있어서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오스만 제국 말기에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이 궁전의 한 방에서 케말 파샤(아타투르크)가 숨을 거두었고, 그를 기려 시계는 그의 사망시각으로 정지시켜 놓았다.
돌마바흐체는 변한 바가 없었으나 관리 지침은 변했다. 분명히 예전에는 들어갔던 방에 들어갈 수 없었고, 내부 사진촬영 역시 금지된 것이다.
<화려한 돌마바흐체 궁전의 정문>
어쨌든 돌마바흐체 관람을 마치고, 베벡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려는데 버스표는 어디서 파는걸까? 근처의 카바타쉬(Kabataş) 트램역으로 향했다. 혹시 트램용 토큰으로 탈 수 있으려나?
자판기를 이용하여 토큰을 사려는데 어떤사람이 다가와서 귀찮을 정도로 사용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줬다. "3리라를 여기에 넣으면 되고, 어쩌고~." 토큰을 사고, 잔돈을 지갑에 넣으려고 가방을 보는데 가방이 열려있다. '어라? 분명히 지갑을 넣고 지퍼를 닫았는데?'
이상하게 생각하며 가방을 보니 지갑이 없는 것이다. 가방 안쪽에도 지갑은 없었다.
아차. 어렵지도 않는 자판기 사용법을 이상할 정도로 열심히 가르쳐 준다 싶더니. 그리고 마지막에 자판기를 나오면서 뒤의 여자와 살짝 부딫혔었다. 아마 지퍼를 닫으려다 내가 몸을 돌리니 부딫혔나 보다.
'아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우선은 목표했던 베벡에 그대로 가기로 했다. 나때문에 다른 일행들까지 기분 망치게 하기는 싫었으므로, 태연히 있었으나 머리속은 도무지 정리가 안된다.
우선 기억을 더음어 보니, 지갑에는 운전면허증, 국제학생증, 현금카드, 신용카드, 전역증, 100달러 여행자 수표, 현금 100리라, 여권사진 몇장 등이 들어있었다. 하필이면 방금 전에 100리라 인출했는데……. 일단 신용카드부터 정지시켜야겠다. 베벡에 도착 후, Wifi를 이용하기 위해 바로 커피숍에 들어갔다. 신용카드 분실신고 및 정지 완료.
<사건이 발생한 카바타쉬 트램 역>
터키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처럼 좀도둑 소문이 많은 곳도 아니고, 특히 치안이 좋던 아랍 에미레이트에 있으면서 방심한 것. 게다가 터키에 돌아와서 들떠 있다 당한것이다. 그동안 허리가방을 이용했는데, 에미레이트에서부터 더워서 착용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백팩 앞칸에 지갑을 대충 쑤셔넣은게 화근이었다.
더 기가막힌건 인적이 드문 곳도 아니고, 바로 앞에는 CCTV가, 근처에는 역 보안요원이 있었다.
아무튼 곤란하게 되어버렸다. 호스텔로 복귀하는데도 돈을 빌려야 했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여행자보험이라도 들어 놓을 걸 그랬다. 단, 여행자수표는 폴리스 리포트가 있으면 귀국 후 보상이 된다고 한다. 다음날 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숙소 근처의 관광 경찰(Tourist Police)은 유창한 영어로 자기 구역이 아니라서 해결할 수 없다면서 로컬 경찰서로 가라면서 종이에 터키어로 상황을 적어줬다.
로컬 경찰은 상황을 접수하고 우선 현장 검증을 요구했다. 덕분에 이스탄불 경찰차를 타게 되었다.
참, 터키 경찰차는 뒷 좌석 문을 내부에서 열 수 있다. 이걸 확인하려고 신호 대기중에 문을 열어 보다가 이상한 녀석 취급을 받았다.
<이스탄불 경찰차. 우측 뒷모습은 터키 형사>
현장검증은 금세 끝났다. CCTV가 있고, 현장 보안요원이 아무것도 못봤다는것만 확인하고 경찰서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동안 영어로 이야기 하던 경찰은 갑자기 통역관을 불러오라는 요구.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대들자 결국에는 영어 가능한 근처 호텔주인을 불러왔다. 처음에는 기분나쁘게 생각했으나 자의적 해석을 막기 위한 절차 문제인것 같기도 하다.
이어지는 질문과 취조.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피해자에 대한 대우가 아니다. 오히려 범죄자 취급하듯이 강압적으로 대하는 것.
"왜 어제 바로 경찰서에 오지 않았냐. 분 단위까지 정확하게 알아야 CCTV를 확인할 수 있고, 하루가 지나서 영상은 지워졌다". 심지어는 "터키에 왜 와서 이런 일을 자초하냐"는 질문까지 하는 것이다. 이럴수록 기에 눌리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나도 덩달아 눈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높였다.
"7년 전에도 왔는데 터키가 너무 좋아서 그동안 돈을 모아 다시 왔다. 터키의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하여 아타투르크를 존경하게 되었다. 나는 터키는 형제의 나라이며, 술탄 메흐메드 2세처럼 터키인들은 정의롭고 관대하다고 들었다. 내가 틀렸냐? 너희 나라는 도둑에게 관대한 나라였냐?"
<잘 활용한 술탄 메흐메드 2세 - 내가 그렇게 가르치더냐?>
어처구니없게도 경찰과 싸우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애꿏은 호텔 주인만 경찰 눈치보면서 통역하고 있다.
역사 이야기를 꺼낸게 먹혔는지, 통역관의 솜씨인지 경찰의 태도는 많이 누그러졌고, "당장 범인을 잡으라는게 아니다. 내가 도난당한 물품을 증명할 수 있게 폴리스 리포트를 써 달라"라는 주문에 결국 조서를 써 줬다.
<경찰과 말다툼 끝에 얻어낸 리포트>
7년 전에도 이스탄불에서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그때는 터키청년들을 따라 지하의 한 술집에 갔다가 거액의 청구서를 받은 것. 그때는 마치 계산할 것 처럼 통신사 멤버십 카드를 주고, 카드 결제가 안되니 돈찾으러 같이 은행에 가자는 명분으로 무사히 탈출했다. 덕분에 공짜 술만 먹고 잘 놀다 왔다.
이 수법은 아직도 쓰이므로 조심하라고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다. 그걸 보면서 '이녀석들은 7년동안 발전이 없구나.' 생각하며 나는 절대 당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었다.
<갈라타 다리의 석양>
그런데 멍청한 녀석들이나 당하는 줄 알았던 소매치기를 내가 당할줄이야……. 아! 인도에서 소매치기는 물론 5루피(100원)를 안주기 위해 자칭 건달이라는 녀석과 대치하기도 했는데 이게 뭔가?
이런 일이 생기니 그 좋았던 이스탄불도 싫어지고, 심지어는 여행 자체에 흥미가 뚝 떨어져 버렸다. 이제는 관광지 한복판에 있어 편리하던 교통으로 늘 사람이 북적거리던 호스텔도 싫어졌고, 어딘가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이쯤에서 귀국 해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당장 비행기표를 구입할 수 있는 수단조차 없다.
<탁심 광장의 야경>
마침 비상용으로 만들어놓은 여분의 현금카드가 있다. 우선 15년지기 친구 성재에게 연락해서 일단 급한 돈은 융통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숙박비와 빌린돈은 갚을 수 있게 되었다.(성재야. 고맙다. 조만간 갚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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