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터키(투르키예 공화국, Türkiye Cumhuriyeti)는 어떤 나라인가?
일각에서는 형제의 나라라고 한다. 나한테 브라더 컨트리라면서 접근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녀석들이 많았다. 지갑 도난때도 들었던 말이고, 게이(아, 예쁜 터키아가씨들은 다 어디로 가고 게이들만 접근하는건가!)도 처음에는 브라더를 외쳤다. 정작 내가 곤란했을때는 듣지 못한 말이다.
브라더 운운하는 사람들 중 가장 점잖은 부류는 상점 주인(호객꾼 포함)이니 형제는 이게 무슨 형제인가.
터키의 역사도 매우 복잡하다. 가이드북의 정보란에는 트로이, 히타이트, 앗시리아, 페르가몬 등 현재 터키 땅에서 발현한 고대 문명과 왕조들이 소개되어 있었으나, 내 관심사는 아니었다. 다 그 땅의 역사일 뿐. 내가 알고싶은것은 현재 터키인들은 대체 어디서 왔고, 어느 민족이고, 어떻게 살아왔는가?이다. 대체 터키 이녀석들 정체는 뭐고 칠면조와는 무슨 관계야?
고대부터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고, 그러기에 수많은 왕조와 민족이 중흥했던 땅. 그들의 역사는 당연히 수많은 전쟁으로 점철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스탄불의 군사 박물관에 방문했다.
<대포속의 고양이가 맞아주던 군사박물관>
군사박물관은 시대순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바로 첫번째 방에서부터 하나씩 궁금증이 풀리기 시작했다.
터키어를 모르므로 정확히 이해할 수 는 없지만, 바로 터키 민족의 이동 경로가 걸려있는 것. 중앙 아시아는 물론 아라비아 반도와 현재의 독일 부근까지 진출해 있었는데(주황색 선) 그 발현지는 바로 고비사막 서쪽이었다. 조금 더 동쪽에는 한반도가 보인다. 그들의 근원지가 고비사막 부근이라면 만주를 지배하던 고구려시대 충분히 접촉이 가능했으리라.
<터키 민족의 이동>
아니나다를까 옆에 있는 디오라마는 성을 공략하는 모습이다. 아마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과 교전하는 모습인가보다. 그 복장은 털가죽 옷을 입고, 변발을 하기도 한 모습. 야만인이라고 부를 만한 모습이다.
<만리장성 공략>
하지만, 야만인은 그들과 싸운 적들의 표현일 뿐이다. METE HAN은 10진법을 사용하여 군대를 편제하고, 학익진을 통해 포위섬멸 전술을 펼치는 조직화된 정규군을 이끌고 있었다.
<말 두마리를 타는 전사. 말이 말 안들으면 가랑이 찢어질라>
아. 이는 누구인가. 아틸라. 바로 로마제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훈족의 지도자이다.
훈족에게 시달린 나머지 유럽에서는 폭군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심지어는 단테의 신곡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훈족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유발시켰고, 결국 서로마 제국을 멸망으로 이끈다. 대체 이 사람이 왜 여기에서 기념되는 것일까?
<아틸라의 흉상과 그의 제국>
그렇다. 터키인들은 아틸라를 그들의 조상으로 기리는 것이다.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보았다.
훈족을 흉노로 해석하는 설이 지배적인데, 흉노는 한나라로부터 조공을 받을 정도로 강성하던 제국이었다. 흉노의 한 부족을 다스리던 아틸라는 5세기 유럽으로 서진하여 게르만족을 이동시켰다. 한편, 학자들은 신라와 흉노를 연관시켜 연구하기도 한다. 흉노 출신 김일제가 김알지라는 설도 있고, 신라고분의 황금보검이나, 로만 글라스, 사슴뿔 모양의 금관 등을 근거로 흉노와 신라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돌궐(투르크)제국은 흉노의 별종이라고 한다. 즉 흉노의 후손인 것이다. 돌궐은 7세기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수, 당과 대립하게 된다. 돌궐제국은 동서 분열 후 당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당의 힘이 미치지 않는 서쪽으로 계속 흩어지게 된다.
이후 10세기, 흩어진 돌궐의 후손들 중 일부는 셀주크의 지휘 하에 다시 부흥하니 바로 셀주크(Seljuk) 투르크 제국이다. 셀주크 제국은 이미 예전 돌궐제국과는 많이 달라졌다. 서쪽으로 이동하며 이슬람을 받아들인 것이다.
변하기는 했지만, 셀주크 전시관의 초상화를 보면 눈매, 광대뼈, 갑주 형태 등 아직은 외모나 복장에서 동양의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다.
<셀주크 제국의 군주와 장수들>
그리고, 카라만의 메흐메드 베이(Karamonoglu Mehmet Bey, ?~1280)라는 사람의 동상이 서 있었다. 베이는 터키의 장관정도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이 사람은 군사적으로도 뛰어났지만, 국가를 통합하기 위하여, 터키어를 공식 언어로 선포했다고 한다.
<메흐메드 베이>
셀주크 제국은 십자군을 맞아 싸우며 지속적으로 유럽과 대립하며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하여 13세기에 몽골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된다.
<십자군 전쟁. 성 요한 기사단의 깃발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오토만(Ottoman)이라고도 하는 오스만 제국(Osman Empire)이 등장한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의 초상에서 이제는 동양의 느낌보다 이슬람 세계가 느껴지게 된다. 이제는 이슬람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문화에 중동, 유럽까지 세력을 넓히면서 지속적인 혼혈의 결과가 아닐까?
<오스만의 술탄들>
현재 터키 제1의 도시 이스탄불은 고대에는 비잔티움으로 불렸고,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천도하면서 콘스탄티노플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은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 천 년을 지속해왔나, 15세기에 이르러 비잔틴(동로마) 제국은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하는 상태로 전락한다.
이때,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삼중성벽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재현한 상황도>
물론 당시의 편제는 현재와 다르겠지만, 전투지경선만 얼핏 봐도 군사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파란색 오스만은 3개 이상의 야전군이 참여한 반면, 빨간색 비잔틴 측은 고작 1개 사단급이다. 제해권은 오스만이 장악하고 있었으나, 당시 함포 수준으로는 콘스탄티노플 성벽을 공략할 수 없었고, 덕분에 비잔틴군의 대부분 병력은 서쪽 성벽에 집중되어있다.
서쪽 HALİÇ라고 표시된 부분이 금각만(Golden Horn)이다. 뿔같이 생긴 이 만은 콘스탄티노플의 천연 해자역할을 한다. 게다가 금각만 진입로에는 쇠사슬을 쳐서 오스만 함대의 진입을 봉쇄했다고 한다.(상황도의 점선 표시)
<당시 금각만을 봉쇄했던 쇠사슬>
1453년의 쇠사슬 방어막은 약 100년 후 지구 반대편에서 다시 등장한다. 비잔틴의 쇠사슬은 실패했으나 조선의 쇠사슬은 성공했다. 바로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때 울돌목을 막아 133척의 적함을 봉쇄하고, 12척의 전함으로 각개격파한 것이다.
그러면, 비잔틴의 쇠사슬 봉쇄는 왜 실패한것인가?
위 상황도에 보면, 갈라타(GALATA) 위쪽 점선을 따라 오스만 함대가 이동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 술탄 메흐메드 2세는 해상 봉쇄선을 돌파하기 위해 배를 산으로 옮긴 것이다. 육지에 통나무를 깔고, 배를 끌어 금각만 안쪽으로 함대를 이동시켰다고 한다. 비잔틴 해군은 완전히 포위된 것이다.
<콘스탄티노플 전투의 디오라마>
하지만 해전만으로는 이 성벽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헝가리출신 대포 기술자 우르반. 원래는 비잔틴 제국에 자신의 대포를 판매하려 했으나, 성벽을 믿고 있던 비잔틴에서는 거절했고, 이에 오스만 제국에 콘스탄티노플 성벽을 부술 수 있는 대포를 제안하게 된다.
기독교 입장에서는 배신자일수도 있겠으나, 마자르족의 헝가리 역시 훈족의 일파라고 한다. 종교보다는 민족을 따른 셈으로 볼 수도 있겠다.
마침내 세계 최초의 박격포가 등장하고, 결국은 콘스탄티노플 성벽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하게된다. 이 포를 이용하여 무려 600kg에 달하는 돌을 날렸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돌덩어리>
마침내 무너진 비잔틴 제국. 로마는 로물루스에 의해 건국되어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가 폐위됨으로서 멸망했다.
반면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비잔티움으로 천도한 동로마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11세를 마지막으로 멸망했다. 묘하게도 건국자와 마지막 황제의 이름이 같은 두 나라다.
아무튼 오스만 제국은 1453년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켜 유럽을 경악에 몰아넣고, 이후 술탄 슐레이만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까지 원정을 한다.
<술탄 슐레이만의 비엔나 원정>
이후에도 오스만 투르크는 두고두고 유럽을 괴롭혔다.
성 요한 기사단을 몰타 섬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베네치아 공화국과 함께 동방 문물을 독점함으로써 희망봉 항로 개척과 신대륙 발견을 촉진시켰다. 레판토 해전에서는 비록 지기는 했으나 베네치아, 교황청, 스페인 연합함대와 싸우기도 하며 세를 과시했다. 돈 키호테를 집필한 세르반테스도 이 전투에 참가하여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나이팅게일이 활약한 크림 전쟁 역시 오스만 제국이 끼어들었다.
오스만 투르크가 얼마나 골칫덩어리였는지는 영단어에서도 나온다. Turk를 엣센스 사전에서 찾아보면, (n) 1. 터키족 사람, 터키사람; (古) 오스만 제국 사람. 2. 터키(산) 말, 3. 난폭자, 잔인한 사람, 무법자 4. (美俗) 남색가
이런 터키가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 유럽 연합에 합류하려 노력하는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오스만 군이 특이한 점 중 하나는 세계 최초로 군악대를 운영했다는 것이다. 바로 메흐테르(Mehter).
이들은 음악으로 아군의 사기를 올리고, 적들은 전투전에 이 연주만 듣고도 달아날 정도였다고 한다. 나중에는 메흐테르의 군악을 모티브로 터키풍 음악이 유행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모짜르트가 영감을 받아 터키 행진곡을 작곡하기도 한다. 또한, 군사 박물관에서는 매일 15:00에 메흐테르의 공연을 하고 있었다.
<메흐테르의 군악 연주>
군대에는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오스만 제국은 확실히 줄을 잘못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계속 대립하던 오스만 제국은 1차 세계대전 초반 중립을 지키다가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독일 편에서 참전하게 된다. 결국 넓은 영토를 다 잃고 심지어는 제국이 헤체되기에 이른다.
<칼날이 달린 리볼버>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에는 새로운 영웅이 등장한다. 바로 무스타파 케말. 케말 파샤(터키어로 장군)로 알려진 인물이다.
<오스만 사관학교. 우측 1오 2번 생도에게 무스타파 케말. 1오 1번은? >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갈리폴리에 상륙을 시도하는데, 바로 케말 파샤가 지휘하는 오스만군이 연합군의 상륙 시도를 좌절시킨 것이다.
비록 패전국으로 영토 대부분을 잃었지만, 케말 파샤는 현재 터키땅을 지켜내고, 1차대전 이후 그리스-터키 전쟁도 승리로 이끈다. 또한 케말 파샤는 술탄제를 폐지하고 터키 공화국을 출범시키며 초대 터키 대통령이 된다.
군사박물관에는 또 하나 의미있는 전시관이 있었다. 바로 한국 전쟁관이다. 터키의 참전 배경은 NATO 가입이 주 목적이라고는 하나, 수많은 터키 청년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뜨거운 피를 흘렸다.
<6.25. 사변 당시의 터키 국기와 훈장>
특히 장승천 전투 당시 터키여단 1대대 1중대 경계소대는 중공군과 맞서 싸우면서 전멸하는 순간까지 임무를 완수하여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작년에는 장승천 전투 전적비를 세웠다고 한다.
7세기 말, 돌궐이 고구려와 함께 수나라에 맞서 싸운 이후, 1,300년 만에 다시 대한민국 국군과 터키 공화국군으로 만나 중공군과 싸운 것이다. 흥미롭게도 적도 계속 동일하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은 터키에 전투기, 전차 등을 수출하기도 하며, 민간외교와 군사외교를 병행하여 우호를 돈독히 하고 있다.
<장승천 전투 전적비 제막식 사진이 있었다>
한 민족과, 대 제국의 흥망성쇠를 군사박물관을 통해 불과 몇 시간만에 훑어본 것이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터키. 우선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피를 흘리신 참전 용사들의 희생에 감사드린다.
형제의 나라 - 호객꾼들과 사기꾼들이 너무 많이 사용해서 아무런 감흥도 없던 표현. 이제는 형제의 나라라는 표현이 어딘가 애틋하게 다가온다. 덕분에 지갑 도난 이후 싫어졌던 터키에 다시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탁심 광장 부근에서는 반 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정확히는 에르도안(Erdoğan) 총리의 이슬람화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라고 한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시위 진압용 최루탄이 한국에서 수출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다행히 가스실습을 할 기회는 없었다.
<요구를 주장하는 시위자와><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는 전투 경찰들>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현실로 돌아오니, 현실적인 난제가 기다리고 있구나. 과연 터키는 이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형제의 나라 터키가 큰 희생 없이 당면한 정치적 문제도 잘 해결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좋은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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