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밧드 호스텔로 숙소를 옮긴 후에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네팔 포카라에서도 만난 해병대 전우 재학씨. 세계 여행하던 건부장님 건우와 상하씨와 함께 이스탄불 휴양을 시작했다.
<이스탄불의 휴양>
이스탄불의 관광 명소인 구 시가와 신 시가는 어느정도 둘러 봤고, 여유있게 움직이던 장기 여행자들과 어울리면서 나 또한 덩달아 여유를 갖게 되었다.
출발을 차일 피일 미룬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지갑 도난 이후 약간의 회의감도 들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또 방학을 맞아 호스텔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였다.
바로 신용카드. 지갑의 다른 것은 포기했으나 어쨌든 신용카드는 필요했고, 앞으로 갈 유럽은 학생할인이 많다고 한다. 친구 성재를 통해 신용카드와 국제학생증을 재발급 받고, 다시 터키까지 배송을 요청했다. 본인이 아니라 여러 어려움이 있었고, 카드는 우편 발송도 안되지만, 성재는 바쁜 와중에도 EMS를 보내줬다.(매번 정말 고맙다)
우편물을 기다리는 동안, 이번에는 이스탄불 외곽을 다니기로 했다. 알고보니 내가 돌아다닌 곳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이스탄불은 매우 넓었고, 분위기도 각양 각색이었다.
<보소포러스 대교는 자살방지 대책으로 인도 진입이 금지되어있었다>
우선 보소포러스 대교를 건너 아시아 지역.
다리 하나를 건너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다니. 하지만, 다리 양 끝단에는 Welcome to Asia라는 작은 표지판 뿐이었다. 오히려 거대한 표시보다, 작기 때문에 더 이스탄불스러웠다. 이 사람들에게는 아시아-유럽간 이동이 거대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냥 삶일 뿐이다. 물론 자전거로 다닌 나로서는 매우 감격적이었다.
<다리 양 끝은 유럽과 아시아의 시작>
아시아 지역은 관광지 보다는 주거지역의 성격이 강해 보였다. 또 부둣가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시아 카디쿄이(Kadıköy)의 거리><이름모를 개천도 있었다>
다음에는 내친 김에 이스탄불 북쪽 끝까지 가 보았다.
<숲과 같은 Rumeli feneri 가는 길>
이스탄불의 북쪽 가장 끝, Rumeli Feneri까지 가서 흑해의 시작을 보기도 하고, 보소포러스 해협을 둘러보기도 했다.
이 와중에 드디어 주행거리 5,000km을 돌파했다. 이제 엔진오일 한 번 갈 타이밍. 이스탄불에서 휴식중이다. 사실 매우 느린 걸음이다. 네팔과 UAE에서 장기간 체류하면서 8개월만에 겨우 5,000km을 넘은 것이다.
<주행거리 5,000km의 감격적인 순간>
유럽 쪽 루멜리 카바우(Rumeli Kavağı)에서 페리를 타고 아시아로 넘어가면 아나돌루 카바우(Anadolu Kavağı)다.
<아시아로 가는 바닷길><아나돌루 카바우 성채가 보이고>
<아시아와 유럽을 배경으로>
아나돌루 카바우에서는 페리로 복귀했다. 바닷길 역시 보소포러스 유람선이 부럽지않은 멋진 길이다.
<아나돌루 카바우 선착장><밑에서 보면 또 다른 느낌의 보소포러스 대교><강태공들이 모인 갈라타 다리>
갈라타 다리에서는 고등어 케밥을 즐겨 먹었다. 고등어를 구워 빵에 각종 야채와 함께 넣어먹는 음식인데 참 맛있다.
<고등어 케밥과 오렌지 쥬스>
1리라짜리 오렌지 쥬스도 참 맛있었고, 그 앞에서 바라보는 술탄 아흐멧 지구의 야경도 정말 멋지다.
<멀리 보이는 슐레이마니 자미>
두바이에 있으면서 종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성경을 조금 읽다 나왔다. 나중에 귀국하면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성경도 마저 읽을 생각이었다. 물론 여행중에는 잠시 휴식.
그런데, 우연히 만나게 된 최회림 씨가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책을 한 권 내밀었다. '메세지'라는 제목의 책. 성경을 현대에 맞게 쉽게 번역한 성경책이었다. 팔레스타인에 유학을 간다는 친구였는데 왜 나한테 이런책을?
이것도 의아했는데 숙소에서 만난 상하씨와 이야기하다 보니 주말에 이스탄불 한인교회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철인 3종이 취미인 그는 세계여행 중에도 꾸준히 교회를 찾아다닌다고 한다. 나도 덕분에 교회에 다시 발을 들이게 되었다. 아무래도 여행 중에도 성경을 조금씩이라도 읽어야 할 것 같다.
<이스탄불 한인교회. 이때만 해도 4주나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느긋한 이스탄불의 생활.
더우면 근처의 바다에 뛰어들어 피서를 하고, 바다 속에는 홍합이 많았다. 홍합을 따서 홍합 라면도 끓이다 보니(늘 라면을 제공해주신 신밧드 호스텔 지마 형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예 재미가 붙었다. 홍합탕도 먹고 나중에는 아예 잔뜩 따서 천기와 사장님께 드리기도 했다.(물론 그 이상의 대접을 받았다. 제육덮밥 정말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해변에서 바베큐 파티도 몇번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 그나마 늦잠자지 않는 이유는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조식 덕분이었다.
<잘 익어가는 양 갈빗대>
하지만, 하루하루 휴식이 길어지다 보니, 고단한 자전거 여행길에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길을 떠나기 위해 호스텔 체크아웃까지 했는데 반가운 연락이 왔다.
바로 인도에서 동문수학하던 민규 형님이 잠시 시간이 난다고 자전거 여행에 동참하신다는 것! 아, 이제는 매일매일 외로운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구나!
<슐레이마니 자미의 야경>
다시 호스텔에 체크인. 형님을 기다리는 며칠동안 여행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이스탄불 여행 기념 동영상을 한 번 찍어보기로 했다.
바로 호스텔에 있던 사람들을 끌여들였다. 이렇게 해서 모인 멤버는 자전거 여행자 뿐만 아니라, 세계 일주 여행자, 이스탄불의 사업가, 학교 선생님, 의사 선생님, 컴퓨터 엔지니어, 학생 등 다양했다. 공통점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부랴부랴 학교에서 댄스 동아리라는 효선의 지휘에 따라 밤 늦게까지 춤 연습을 했다.
<미마르 시난 까페에서 바라본 이스탄불의 야경>
다음날, 마침내 실제 행동에 옮기기로 했다. 이왕 찍을 거, 재미있는 기억을 남기자는 생각에 샤르자 국제공항을 민망함으로 물들였던 쫄 공항패션을 기본으로 머리에 티셔츠를 묶고 작업용 코팅장갑까지 끼고 아야 소피아 앞으로 나섰다.
복장이 특이하긴 했나 보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마디 - "닌자". 사진도 여러장 찍어주며 아야 소피아 - 갈라타 다리 - 이집션 바자르 등을 돌아다녔다.
<이스탄불 닌자 출현?>
마침내 완성된 작품(?) 신밧드팝(http://youtu.be/zxTA_kvZ5U4). 많이 부족하지만 나에게는 이스탄불에서의 유쾌한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P.S 보다 자세한 제작 동기 및 과정은 세계여행자 인식씨의 블로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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