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가 보낸 EMS는 하루하루 기다려도 도착하지 않았다. 배송조회를 해 보니, 터키 세관은 통과한 상태. 알고보니 바이람(Bairam) 기간이라 모든 관공서가 쉬는 것이다.
바이람은 라마단의 한 달 단식이 끝난 것을 기념하는 이슬람 명절로 3일동안 계속된다. 터키는 이슬람의 영향은 크지만 국교도 아닌데 이런 명절까지 지키는 건가? 제대로 금식하는 사람도 얼마 없고, 밤에는 더 많이 먹었으면서 또 쉰다는게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 바이람은 터키의 큰 명절이었고, 우리의 설 처럼 민족 대이동이 발생하여 차표를 못구하는 여행자도 많았다.
<로마 수도교를 활용한 도로>
그 사이 민규형님이 이스탄불에 오셨다. 형님은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자전거 여행에 동참하기 위해 오신 것. 신밧드 호스텔의 지마형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쓸 만한 자전거를 찾아 이스탄불을 함께 돌아다면서 유창한 터키어를 이용하여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자전거를 구입한 이후, 적응 기간동안도 함께 해 주셨다. 지마형님 민규형님과 함께 루멜리 히사르(Rumeli Hisaı)까지 하이킹도 다녀오고 각종 저렴한 맛집도 찾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베벡 부근의 선착장><보소포러스 다리앞에서 세 명의 라이더>
7월 17일. 제헌절에 터키 행 비행기를 타서 8월 15일 광복절이 지나도록 신밧드 호스텔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또다시 해변 바베큐 파티를 열어주셨다. 덕분에 배를 든든히 채우고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잘 익어가는 고기와 함께>
마침내 8월 20일. 성재 덕분에 카드도 잘 받았고 출발 준비 완료. 이제 진짜 이스탄불을 떠나는 날이다.
<투어링 캔버스에 글을 남겨 주시는 지마형님>
정 많은 지마형님은 출발 전에 라면, 고추장, 김 등 한식도 두둑히 챙겨 주셨고, 작은 태극기도 주셨다. 그동안 공식적으로 제공되는 조식 외에도, 이런 저런 기회로 먹은 라면이 몇개인데. 그저 감사할 뿐이다.
<출발 전 신밧드 호스텔에서의 단체사진>
날씨는 화창하다 못해 햇살이 뜨거웠다. 좀 더 편하게 달리려면 아침 일찍 출발했어야 한다. 하지만 게으름과 이스탄불을 떠나는 아쉬움이 겹쳐 쉽게 출발하지 못했고, 결국 점심식사까지 하고서 가장 더운 시간에 출발하게 되었다.
그런데 더 큰 감동은 지마형님께서 약 20km가량 자전거로 배웅을 나와 주신 것.
이 더운 시간에 한 번 나오면, 돌아가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밀린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함께 해 주시며 주행중에는 사진도 찍어주셨다.
<덕분에 남기게 된 주행사진>
한참을 함께 달리다 마침내 아쉬운 헤어짐. 기념촬영 후에 진짜로 헤어졌다.
<신밧드 호스텔 지마형님과>
여행 다니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이런 배웅은 처음이었기에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고, 더욱 감사할 뿐이다. 다시 신밧드로 돌아가시는 뒷모습에서 말로 표현못할 진한 정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지마형님의 뒷모습>
목적지는 에디르네(Edirne). 둘이 다니는 건 처음인데 의외로 신경 쓸 부분이 많다. 거리가 너무 벌어지면 헤메게 되고, 도로도 위험한것 같아서 속편하게 O-3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터키 고속도로는 이륜차 통행을 허용하고 통행료도 없다. 특히 갓길이 넓어서 오히려 더 안전했다. 계속 직진이므로 길이 엇갈릴 우려도 없고~
<민규형님의 주행>
한참 주행 후, 마지막 고개를 넘고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이제 숙영을 준비해야 할 시간. Kumburgaz라는 마을인데 멋진 해변이 있었다.
민규형님과의 첫 야영은 백사장으로 결정. 주행거리 67.59km, 누적거리 5,256km이다.
<해질녁의 Kumburgaz 해변>
8월 21일.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고속도로는 길은 좋지만 지루하다. 길에서의 만남도 없고, 멋진 곳이 있어도 접근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에디르네까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할 계획이다.
속도 차이에 대한 문제는 어느정도 방법을 찾았다. 어차피 복잡하지 않은 도로이므로 한참을 달려가서 쉬는 것.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마주치겠지.
남는 시간에는 휴식도 하고 사진 촬영도 했다. 이스탄불에서 해병 수색대 출신의 노경빈씨를 만났는데, 사진을 찍는 도중 렌즈를 움직이면서 찍는 기법을 가르쳐줬다. 의외로 신기한 효과가 나서 한 번 적용해봤다.
<새로운 기법으로 찍은 고속도로상의 Wing>
그러고 보니 그동안 Wing도 많이 변했다. 인도에서 개조ㆍ장착한 가방은 떼어냈고, 자전거용 앞 페니어를 달았고, 저렴한 흙받이가 있어서 장착했다. 앞 뒤 무게도 적당히 분산했으니 이제 스포크 파손의 부담은 한결 덜겠지?
이날은 94km을 달려(누적거리 5,350km) Akça라는 마을 3km 전방의 휴게소에서 쉬기로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의외로 멋진 곳이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어서 씻을 수도 있고, 휴게소이니 만큼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식사나 부식류 구입도 가능하다.
<휴게소 한켠에 펼친 텐트 두 동>
이제 에디르네가 얼마 남지 않았다. 주위 풍경은 완전한 시골이다.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밭과 공터. 하얀 구름은 언제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진 해바라기밭><터키 차이(홍차)를 주신 휴게소 기사님들. 이분들도 브라더 컨트리를 외치셨다>
이날은 민규형님과 사인이 잘 맞지 않았다. 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못 찾고 지나치는 등 두 차례 놓치기도 했지만 다행히 도로 중간에서 다시 만났다.
어느새 에드르네 진입. 날은 저물고 있고, 다시 숙영을 준비해야 한다.
<에디르네의 석양>
저렴한 숙소를 찾는 도중, 민규형님이 놀라운 협상력으로 힐리 호텔이라는 곳을 잡으셨다. 한 눈에 봐도 비싸 보였는데 정가는 2인실 120유로(약 18만원). 하지만 우리가 지불한 금액은 100리라(약 6만원). 도시 외곽이라 빈 방이 많았지만 상상도 못할 금액이었다. 아마 나 혼자라면 시도도 안하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8월 22일. 덕분에 에디르네에서는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주행거리 94.48km, 누적거리 5,444km)
<여행 중 묵었던 숙소 중 최고급 호텔 Hilly Hotel>
에디르네는 그리스-불가리아 국경에 인접한 도시다. 간단하게 시내 구경 후 국경을 넘기로 했다.
에디르네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셀리미예 자미(Selimiye Camii)였다. 술탄 셀림 2세의 지시로 만들어진 이 모스크는 오스만 제국의 최고의 건축가 미마르 시난(Mimar Sinan)이 지은 건물이다. 미마르 시난은 슐레이마니 자미 등 많은 건축물을 남겼으나 평생을 아야 소피아에 대한 컴플렉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슐레이마니 자미를 완성하고도 아야 소피아보다 더 큰 기둥없는 돔을 지을 수 없을거라는 말을 들어야만 했고, 결국 아야 소피아보다 더 큰 돔형 모스크인 셀리미예 자미를 지음으로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셀리미예 자미의 모습>
하지만 전반적인 느낌은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와 비슷하다. 사실 터키의 대부분 모스크는 대부분 이런 형태다.(아야 소피아와 마주한 블루모스크 역시 동일한 모습) 어쩌면 크기에만 집착한 나머지 결국 아야 소피아보다 더 혁신적인 건물은 짓지 못한 셈이다.
저 유명한 미켈란젤로가 가장 존경한 건축가가 바로 미마르 시난이었다고 하며, 미켈란젤로 역시 거대한 돔이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니 결국 아야 소피아 스타일이 이슬람 사원과 가톨릭 성당에도 영향을 끼친 셈이다.
또한, 아야 소피아를 짓고서 솔로몬을 능가했다고 자부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나, 콘스탄티노플 점령 후 약탈 명령을 내리고도 아야 소피아만은 보전한 술탄 메흐메드 2세의 마음이 짐작되는 부분이다.
<미마르 시난 동상과, 그가 만든 돔의 내부>
그런데 터키 사원은 다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본 셀레미예 자미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각이 살아있는 남성적인 디자인은 위압감마저 느끼게 만드는 것. 짧은 지식으로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 내가 틀린 것이다.
<터프하고 웅장한 셀레미예 자미>
반면, 내부의 모습은 다른 터키의 모스크와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
<셀레미예 자미의 내부>
셀레미예 자미를 제외한, 에디르네 시내는 뭔가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좁은 시내는 순식간에 끝나고 시골같은 길이 이어졌다.
<아기자기한 에디르네의 모습>
어느샌가 마차가 돌아다닐 정도였다.
<21C 에디르네의 마차>
조그만 강을 끼고 있는 에디르네는 평화로운 분위기의 마을이었다. 아쉬운 점은 돌로 도로 포장이 되어 있어서 주행감이 엉망이라는 것.
<평화로워 보이는 에디르네>
그리고 8km가량 떨어진 그리스 국경까지는 계속해서 밭이 이어진 시골길이었다. 그리스와 터키는 전쟁도 한 사이인데, 길이 너무 평온해서 이 길이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국경가는 길>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터키 국경. 시골길 사이의 검문소에서는 여권을 보자마자 별 질문도 없이 바로 도장을 찍어 주었고, 이로서 짧았던 터키 여행을 마무리했다.<터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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