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잘 자고 일어났는데, 뒷바퀴 바람이 빠져있다. 뭐지? 물에까지 담궈 확인해봐도 공기새는 부분을 찾을 수 없다. 아마 전날 찢어진 튜브가 온전하지 않은가 보다. 결국 이날은 주행을 포기하고 자전거 정비 및 부르한푸르 구경을 하기로 했다.
부르한푸르는 성벽 도시였다. 아마 오래전에는 요새로 사용되었을 것이다.겉만 번지르한 부르한푸르 성문, 내부는 여느 인도 마을과 다를 바 없다.
오랜만에 이발도 했다. 요금은 30루피. 결과는 딱 30루피 수준이었다.
부르한푸르의 이발사지금은 방음벽 역할을 하는 부르한푸르 성벽
성벽을 따라 가보니 뭔가 실을 한없이 늘어뜨려 놓고 있었다. 가보니 물레를 돌려 로프를 꼬는 현장.로프꼬는 사람들새하얗고 웅장한 구루바라
시크교 사원 구루바라(Gurudwara)에도 잠시 들리고, 자전거포를 발견. 혹시 정비 가능한지 물어보니 주인아저씨는 말없이 튜브를 꺼내고 있다. 전날 붙인 패치를 제거하고, 사포질 후 본드를 바르는 것 까지는 동일했지만 고무덩어리를 올려놓고, 프레스기 같은것으로 누른다. 그리고 전원을 꽂자 열이 난다. 아. 열로 융착시키는 방식이구나.
거의 30분이 지나 튜브정비가 완료되었다. 튼튼해 보인다. 그리고 정비료는 10루피. 200원. 이건 한국에서 사간 튜브 패치보다 저렴하잖아? 더구나 이렇게 꼼꼼히 작업했는데. 또 하나의 수확. 길에서 잠시 쉬고있으면 사람들이 뻥쪄 뻥쪄 하며 말을 걸어 벙쪄 있었는데, 이게 펑크라는 뜻이었다. 아마 Puncture였겠지.(인도에서 Flat tire는 안통했다)열 융착식 튜브정비 및 결과물 튼튼하다.
호텔 Panchvati 로비에는 전자식 저울이 있었다. 몸무게를 재 보니 72kg. 출발 전 83kg을 목표로 했지만 실패하고, 80kg로 출발했다. 보름만에 8kg가 빠진 것이다(다이어트에 최고인듯). 좌 페니어(식량 및 취사도구) 7.02kg, 우 페니어(텐트 및 캠핑용품) 8.16kg, 큰 배낭(침낭, 전자기기) 10.09kg, 작은배낭(의류, 가이드북) 5.14kg. 4관절락(자물쇠) 1.03kg, 매트리스 및 각목 1.17kg. 약 33kg다. 짐 무게가 상당하다.
다음날 다시 주행을 시작했다. 이번 목적지는 옴카레슈와르(Omkareshwar) 작은 바라나시로 불리기도 한다는 힌두교의 성지다. 근데 원조는 안가고 자꾸 작은 타지마할, 작은 바라니시만 가네?
길가에는 2개 중대 규모의 염소떼가 이동중이다. 고개를 앞뒤로 흔들면서 가는 염소가 재미있어서 한참을 구경했는데, 가만 살펴보니 소와는 많이 다르다. 우직하게 갈길 가는 소에 비해서 염소는. 한 녀석은 가다가 풀뜯어먹고, 한 녀석은 뒤로 가고 정말 말 안듣는다. 마치 학창시절 내 모습을 보는 듯하다. 왜, 이솝우화 등 각종 동화에서 염소가 나쁜쪽으로 묘사되는지도 알 듯 하다.
말 안듣는 염소떼의 이동
한참을 가는데 스포크 하나가 또 부러진다. 주로 오르막에서 부러진다. 오르막길을 기피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아마 하나가 부러진 이후, 그 역할을 나머지 스포크들이 하면서 무리가 많이 가는 듯 하다. 다시 정비. 또다시 갈고리 모양을 만들어서 걸고 가는데 갈고리 끝이 부러졌다. 이제 더이상 갈 힘도, 의지도, 시간도 없다. 해도 저물고 있었기에, 바로 숙영을 준비하기로 했다. 현 위치는 Ghaser에서 10km정도 떨어진, 야트막한 산 정상이다.(1월 22일 주행거리 34.24km, 누적거리1,110km)
짜이 가게 울타리 한구석에 허락을 받고 텐트를 쳤다. 텐트 치고보니 울타리는 나무로 엮은 후 소똥으로 미장을 했고, 옆에는 닭 횃대가 있었다. '아, 편히 자기는 틀렸구나.' 벽에 x칠해 놓은 울타리는 의외로 따뜻했다. 완전 건조된 x는 의외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예상대로 닭은 4시부터 울기 시작한다. 아직 어두컴컴하고, 추워서 나가기는 싫은데 너무 시끄럽다. 내가 텐트밖으로 나가면 안울고, 텐트에 들어가면 운다.하룻밤 숙영을 허락해준 짜이가게 주인. 옆에분은 '한라공조'가 씌여진 자켓을 입고 있었다.
닭의 성화에 못이겨 결국 어둑어둑한데 나왔다. 자전거를 정비하고 다시 출발. 얼마 지나지 않아 스포크가 또 부러진다. 이번이 4개째이다. 게다가 스프라켓(뒷바퀴 톱니바퀴 결합체) 쪽이다. 가만보니 제일 먼저 부러졌던 스포크 역시 갈고리 끝이 끊어져 있었다. 그만하면 오래 버텼다.
인도산 1루피짜리 스포크는 너무 잘 휘어지고 탄력도 없다. 게다가 끝은 약간 길고. 처음에는 니퍼로 끊었는데, 이제 니퍼도 없다. 혹시나 해서 칼 끝에 걸고 꺾어보니 부러진다. '강하면 잘 부러지고, 약하면 잘 휘는거 아니었어? 어떻게 만들었길래 잘 휘면서 잘 부러지지?' 다행히 잘 부러지는 바람에 스포크 교체 성공. 스프라켓쪽은 방법이 없다. 제대로 정비하려면 스프라켓을 빼 내야 하는데 공구도 없고, 인도의 길에서 마주치는 자전거가게에서는 정비 불가. 안 부러지기를 바랄 수 밖에. 혹시 다시 부러질까봐 스포크를 휘기 전에, 불을 피우고 불에 달궜다. 혹시 연철이 되면 안부러질까 해서.
한동안 잘 갔지만 결국 다시 부러진다. 이제 이제 방법이 없다. 다 응급조치일 뿐. 더 이상 전진은 불가능. 생각해 보니, 전체 무게의 70% 이상을 지탱하는 뒷바퀴에 무리가 가는 것도 당연한 거였고, 스포크 하나가 부러지니 나머지에 과부하가 걸려서 연속적으로 부러진 것이다. 이대로는 더 가봤자 계속해서 스포크가 부러질 것이고, 과연 얼마나 더 갈수 있을까? 당연히 자전거에 고장이 날 거라고 생각했고, 그에 대비해 체인링크, 타이어패치, 튜브패치, 예비튜브, 브레이크 패드 등을 챙겼다. 하지만 철사 하나 때문에 이런 상황이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위기도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 방책 1. 포기하고 귀국한다.
☞ 가장 편한 방법이겠지. 애당초 언제까지, 어디까지 목표도 없었으니까. 버스타고 이동 후, 델리에 숙소에 짐 다 맡겨놓고 관광도 하고. 적당히 쉬다가 비행기표 사서 귀국하면 된다. 그런데 이대로 돌아가면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음. 아마 평생 후회할 것 같다. 무엇보다 끝까지 해보지도 않고 포기했다는 것에 대해. 예전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자전거로 서울-강릉까지 가보자고 객기섞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준비도 나름대로 했지만, 당시 홍수로 인해 포기했고, 그 친구들과는 지금도 모이면 그때를 아쉬워한다. 더 갈 자신도 없지만, 포기하고 평생 아쉬워할 자신은 더 없다.
○ 방책 2. 지금 타는 Wing을 포기하고 인도 자전거로 교체
☞ 예비부품까지 다 버려야 하고, 무엇보다 페니어 등 장착이 안된다. 기어도 없는 인도 자전거로 여정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 방책 3. 부품을 구할 수 있는 한국에 SOS
☞ EMS로 받으면, 여긴 내륙이니까 한 열흘 걸리겠지? 각종 수리부속과 연장, 배송료까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방법이다.
갑자기 탐험가 스콧이 된 기분이다. 참담하다. 이왕 이렇게 된거 비교나 해보자. 아문센과 스콧. 나에게 아문센의 역할은 인도를 먼저 거쳐간 수많은 자전거여행자들과 레토겠지?
○ 이동수단 : 아문센-개 VS 스콧-말 사용
※ 레토는 앞 뒤 페니어를 이용 앞뒤로 무게를 분산시켰으나, 나는 뒷 페니어만 사용하여 무게중심을 뒤로 다 보냈다.
○ 경험 : 아문센-극지방 전문가 고용 VS 스콧 : 학자 등 비 전문가 인솔
※ 레토는 이전에도 다양한 자전거 여행 경험이 있고 노하우가 있었지만 나는 모두 처음 접하는 상황이다.
○ 목적 : 아문센-남극점 정복 VS 스콧 : 남극점 정복 및 기후, 토양, 지질 조사(남극 광석 등 운반)
※ 레토는 짐을 자전거 여행에 최적화 시켰지만, 나는 선물받은 책 등 불필요한 물건을 몇점 소유하고 있다.
○ 전략 : 아문센-철저한 현지화, 베이스캠프 효율적 활용 VS 스콧 : 모두 영국산 사용 및 선배들의 노하우 무시
※ 한국에서 가져온 필요없는것, 비상식량 등 최소화 하고 필요하면 그때그때 구입하자.
대충 정리해보니 뭔가 잡히는 듯 하다. 그래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 난 스콧이 아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인듀어런스호의 섀클턴이다.'로알 아문센, 로버트 스콧, 어디스트 섀클턴과 유빙에 갇힌 인듀어런스 호
베이스캠프. 베이스캠프? 그래 이거야!!!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한번 해 보자. 잘 휘는 인도산 스포크를 모기향처럼 돌돌 말아서 끼워 넣었다. 힘은 다른 녀석들이 받게 하고, 고정만 시켰다.말아넣은 스프라켓 쪽 스포크. 구불구불한건 꺾었다 편 흔적.
지도를 보니, 옴카레슈와르는 30여 km 떨어져 있다. '이대로 간다. 휠이 휘던 어쩌던 무조건 옴카레슈와르로 간다. 이제 바퀴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도 무시하는거다. 옴카레슈와르 근처에는 인도르라는 대도시가 있으니, 거기까지 가면 맞는 부품을 구입할 수 있을지도 몰라. 다 뒤져 봐야지. 단, 인도르까지 이상태로 갈 수는 없으니, 숙박료 싸다는 옴카레슈와르를 베이스 캠프로 삼는거다.'
결심은 신중하게, 행동은 신속하게. 바로 행동에 옮겼다.천진난만한 아이들은 내 고민은 몰랐겠지
마침내 옴카레슈와르에 진입하는 문이 보이는 감격적인 순간.드디어 옴카레슈와르다
아우랑가바드에서 한홍희 씨에게 저렴한 숙박비로 추천 받았던 가네샤 게스트 하우스를 물어본다. 다행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마침내 가네샤 게스트하우스에 입성했다. 1월 23일 주행거리 87.28km, 누적거리 1,198km.
'수고했어 Wing. 넌 며칠간 휴가다. 내가 인도르를 다 뒤져서라도 싹 고쳐주마.'
붙 임. 가네샤 게스트하우스에 다행히 큰 방이 다 차서 가장 저렴한 방을 쓰게 되었다. 100루피. 여긴 매우 재미있는 곳이다. 100루피(1950원)라는 숙박료에, '광' 같은 빗장을 여니 방이 있는데, 천장에 선풍기 하나, 침대하나, 문 고정시키는 벽돌하나. 끝.
가네샤 게스트하우스 130호
화장실과 샤워장은 물론 공동 사용. 샤워를 하려고 하니 온수를 주는데, 아궁이에서 끓인 물을 '바께쓰'에 반쯤 채워주신다. 섞어 쓰라면서. 샤워장이 불이 안들어온다고 하니까, 예전부터 그랬다면서 양초에 불을 붙여 주신다. 그 흔한 후레쉬도 아닌 '초'. 여기서 키우는 개는 손님을 보고 맹렬히 짖더니, 주인한테 혼나고는 잠시 후 살랑살랑 꼬리를 흔든다. 이런 지조없는 녀석. 그래도 스텝은 매우 친절하고, 경치가 매우 좋다.
어쩐지 '진짜 인도'같은 생각이 드는 곳
왠지 이곳이 마음에 든다. 또, 자전거 정비도 잘 될 것 같다는 즐거운 예감이 든다.가네샤 게스트하우스에서 본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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